삼성家마저 차입ㆍ지분 처분할 정도
최고 세율 50%에 대주주 상속 땐
평가액에 할증… OECD 중 최고율
지분율 하락→지배력 약화 악순환
재계, 세율 인하ㆍ할증 20% 폐지
유산세→유산취득세로 변경 건의
정부도 공감, 과세체계 개선 논의
[대한경제=한형용ㆍ이종호 기자]‘상속세 폭탄’의 화염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고 있다.
삼성가 세 모녀는 최근 삼성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3조3000억원이 넘는 차입금을 조달한 데 이어 계열사 지분 5조원어치를 팔았다. 국내 1등 게임기업 넥슨 일가는 엔엑스씨(NXC)의 주식 29.3%(4조7000억원 규모)를 정부에 물납했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부친 별세 뒤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홀딩스 지분율 1% 정도를 매도하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내주는 상황에 직면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수ㆍ합병(M&A) 시장에 자동차 부품업체 매물이 등장하면서 현대자동차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대규모 주식담보대출ㆍ주식 매각, M&A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상속세’다.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GDP 대비 상속ㆍ증여세수 비중이 OECD 회원국 중 공동 1위(한국, 프랑스, 벨기에)로 매우 과중한 수준에 속한다.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승계 관련 상속세는 최고세율이 50%다. OECD 회원국 중 일본 55%에 이어 2위이지만, 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때에는 평가액에 할증평가(20% 가산)를 적용해 최대 60%의 세율을 받게 된다.
문제는 수조, 수천억원 규모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각하면서 창업주 후손인 총수 등은 ‘최대주주 지분율 하락→경영 지배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ㆍ중견기업도 상속세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오너에게 ‘기업=분신’이라는 공식이 있지만, 최근 들어 성장세가 뚜렷해진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과다한 상속세 등을 이유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나 전략적투자자(SI)에게 매각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M&A를 선택하는 원인은 상속세 부담 및 가업승계를 원하지 않는 후계자의 증가 등으로 예상됐다.
재계는 이 같은 문제 개선을 위해 상속세 개편을 요구해왔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5단체는 최근 과중한 국내 상속세 개선 방안을 담은 ‘글로벌 스탠더드 규제개선 공동 건의집’을 발간했고, 대한상공회의소도 국내 상속세 체계가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과중하다는 주장이 담긴 ‘2024년 조세제도 개선 과제 건의서’를 만들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을 60%에서 OECD 평균인 25%로 줄여야 한다는 내용의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개선 건의서’를,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OECD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 인하 방안을 담은 ‘2024년 중견기업계 세제 건의’를 정부에 제출했다.
건의안의 핵심은 2000년 이후 변화없는 과표구간 개선 및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20%) 폐지,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변경하는 방안이다.
다행히 한국 증시 현안으로 부상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이 ‘상속세’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면서 제도 개선이 예고됐다. 상속세율이 높은 상황에서 과세 기준이 되는 주가마저 높으면 세 부담이 급증하는 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기업들은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거나 가치가 높은 회사를 물적분할해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4차 민생 토론회에서 상속세를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적했고, 이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달 21일 “상속세 때문에 우리 기업 지배구조가 왜곡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각각 2005년과 2014년에 폐지했으며 영국도 단계적 폐지 방침을 밝힌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조만간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 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를 마무리한 뒤 연내 세제 개편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한형용ㆍ이종호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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