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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벚꽃 반드시 4월에 핍니다”…매년 ‘개화 시기’ 정확하게 맞히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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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02 16:10:56   폰트크기 변경      
35년차 ‘벚꽃 베테랑’ 강봉기 은평구 국장

‘적산온도’와 ‘평년값’ 사용해 개화일 연구

9년째 ‘불광천 벚꽃축제’ 총괄

올해 정년…공직생활 큰 보람


서울 은평구청에서 9년째 벚꽃축제 업무를 맡고 있는 강봉기 국장(59)은 ‘벚꽃 베테랑’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구민들이 벚꽃이 가장 예쁜 시기에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벚꽃을 연구해 왔다. 사진은 2일 강 국장이 불광천 벚꽃나무 아래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 . / 사진 : 은평구 제공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벚꽃 베테랑’. 매년 벚꽃 개화의 시기를 정확하게 맞히는 것으로 유명한 한 공무원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구청 공무원이 벚꽃 만개 시점을 기막히게 맞힌다는 말에 기상청 관계자가 만나 뵙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왔다는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바로 공직 생활 35년 차 은평구청의 강봉기 국장(59) 이야기다. 9년째 서울 은평구 ‘불광천 벚꽃축제’를 총괄하고 있는 강 국장은 봄소식이 들려오는 2월 말~3월 초가 되면,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분석하고, 불광천에 나가 벚꽃 나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가 벚꽃에 열과 성을 쏟는 이유는 단 하나다. “벚꽃이 절정에 오르는 만개 시점에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구민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라는 것이다.

올해 벚꽃은 예상보다 늦게 피었다. 기상청은 지난 1일 서울 벚꽃이 마침내 개화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7일이 늦은 개화다.


그런데 당초 작년 기억을 기준으로 삼았던 서울 자치구들은 벚꽃축제를 앞당겨 3월 말로 잡았다. 이에 지난 주말에는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이어졌다.


여의도봄꽃축제가 시작된 후 첫 주말인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 꽃샘추위 등으로 벚꽃의 개화가 늦어졌다. / 사진 : 연합


일례로 서울의 대표적 벚꽃축제인 ‘여의도 봄꽃축제’는 개막 3일 차인 지난달 31일, 벚꽃이 거의 피지 않아 윤중로 거리가 비교적 한산했고, 지난달 27~31일까지 열린 송파구 석촌호수 벚꽃축제는 개화 전에 축제가 끝나기도 했다.


은평구에서도 김미경 구청장이 임원회의에서 “우리도 앞당겨야 할까요”라고 물었지만, 강 국장은 단호하게 “4월 첫주에 만개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비결로 강 국장은 ‘평년값’을 꼽았다. 평년값은 1991~2020년 30년간 기후를 추적해 집계한 평균값이다.

강 국장은 “2월 말부터 올해 벚꽃 개화도 평년보다 빠를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라며 “보도에 맞춰 자치구들도 축제를 앞당겼지만 우리 구는 평년보다 빠르다는 게 작년만큼 빠를 것이란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로 분석했다”라고 설명했다.

강 국장에 따르면, 작년 벚꽃은 이상기온의 영향으로 매우 이례적으로 빨리 핀 해였다. 작년 서울의 공식 벚꽃 개화일은 3월 25일로, 평년인 4월 8일보다 보다 14일이나 일렀다.

강 국장은 “작년처럼 너무 빠른 날을 기준으로 잡기보다는 평년값을 기준으로 매일 적산온도 계산법을 이용해 개화 시점을 역산해 나갔다”라고 말했다.

개화 정확도를 높이는 ‘적산(積算)온도’ 계산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숫자만 기억하면 된다. 바로 기준온도 ‘5.5도’와 적산온도 ‘106도’다.

적산온도는 일 평균 기온에서 기준온도를 뺀 온도를 모두 합한 것을 의미하는데, 벚꽃의 기준온도는 5.5도다. 만약 하루 평균 기온이 10도라면 차이값은 4.5도가 된다. 이 값을 2월부터 매일 더해나간 합이 106도가 되는 날 벚꽃이 핀다는 게 강 과장의 설명이다. 개화에는 햇빛도 영향이 있지만 기온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강 국장은 “올해는 저온현상을 유발하는 기단이 지속된 만큼 2~3월 날씨가 따뜻하지 않았다”며 “적산 온도 계산에 따라 작년보다 개화시기가 절대 빠르거나 같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강 국장은 개화 시기를 맞힐 수 있는 노하우로 불광천변 ‘외톨이 벚나무’를 꼽았다.

강 국장은 “벚꽃길 만들 때 다른 수종 하나가 섞였는지 유독 이 나무만 매년 불광천 벚꽃길에서 일주일 정도 먼저 꽃을 피웠다”라면서 “축제 준비기간 동안 이 나무의 꽃눈을 수시로 들여다 보고,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2일 서울에서 벚꽃이 개화를 시작하자 점심시간을 이용해 찾은 많은 시민들이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 사진: 연합



이런 노력으로 올해 은평구는 다가오는 4일부터 6일까지 불광천 일대에서 3일간 불광천 벚꽃축제인 ‘은평의 봄’을 진행한다. 강 국장은 “중간에 큰 비 소식이 없다면 이 기간에 만개한 벚꽃 아래 많은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실 수 있으시게 됐다”라고 확신했다.

강 국장은 올해 정년을 앞두고 있다. 강 국장은 2002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상암 월드컵경기장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불광천 왕벚나무들이 심어졌던 날부터 지금까지 자그마치 23년을 벚꽃과 함께한 ‘벚꽃 공신’이다.

강 국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치열하게 벚꽃을 봐온 만큼, 벚꽃에 정말 애정이 많아요. 그래도 불광천 벚꽃 덕분에 구민들이 행복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으니, 자랑스럽고 보람찬 공직 생활을 한 나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직하면 저도 부담을 내려놓고 완연한 봄을 구민들과 함께 누리겠습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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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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