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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실버공약이 잘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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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04 16:16:14   폰트크기 변경      
김국진 부동산부장


50대 중반이 가까워지면 관심사가 자녀에서 부모로 바뀐다. 모이면 요양(병)원이 단골 메뉴 중 하나다. 한 지인은 뇌출혈로 쓰러지신 아버님 병세가 나아지지 않으면서 요양원에 모시는 문제를 놓고 가족회의까지 가졌다고 한다. ‘현대판 고려장’인 요양원은 절대 안 된다는 의견과, 남은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경비를 아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고 한다. 가족회의 와중에 툭 튀어나온 “지금 회의하고 있는 우리도 결국 모두 요양원에서 생을 마칠 것”이란 얘기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레 요양원 얘기로 시작한 이유는 ‘공약 홍수’ 속에서도 시니어 공약은 잘 안 보여서다. 공약 홍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전국 민생토론회다. 3개월간 전국을 돌며 24차례나 개최해 무려 240개 과제를 내놓았다. ‘선거용’이란 비판에는 선거 후에도 토론회를 지속한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아쉬움이 적지 않다. 릴레이식 토론회에서 거론되고 결정된 과제 하나하나를 보면 담당 공무원들이 밤새워 만든 듯한 '굵직한 대책'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면서 가치가 희석됐다. 백화점에서 줄 세워가며 완판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인데, 시장 좌판에 깔아놓고 떨이로 판 듯한 느낌이랄까.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란 주제로 원주에서 열린 22번째 민생토론회도 그 단면 중 하나다. 분양형 실버타운ㆍ실버스테이, 고령자복지주택 확대 등이 골자인데, 취지는 좋았다. 다만, 한걸음만 더 나아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선 2월12일 국민의힘이 발표한 ‘어르신 든든 내일2호 총선공약’ 이후 민생토론이어서 구체적 대안, 진전된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알맹이가 부족했다.


5월 별도 대책으로 내놓겠다고 하지만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의 조기 실행과 같은 ‘한방’과는 거리가 있다. 천문학적 재정 부담, 위기상황의 건보 재정, 각종 부작용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 정부와 여당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사활이 걸린 선거판에서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 듯하다.

간병비 급여화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동시에 약속한 대선공약이자, 국민 민심을 파고들 핵심 이슈 중 하나다. 늘 그렇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좀 더 빨랐다. 작년 11월28일 간병비 급여화를 총선 1호 공약으로 발표한 데 이어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까지 최근 간병비 급여화 속도를 높이겠다고 공표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노인층을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로 봐서일까, 서민들에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비치는 실버타운 규제 완화에 그친 모습이다. 공사비와 인건비가 지금처럼 치솟는 상황에서 서민 중산층 가운데 과연 얼마나 실버타운 입주가 가능할까? 분양가 등 부담을 확 줄일 대안도 마땅치 않다. 당정이 작년 12월21일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이미 내놓은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흐름을 빼앗겼다. 오는 7월 시범사업 후 2027년 본사업에 들어간다는 로드맵인데, ‘간병 파산’에 내몰리고 있는 시니어와 가족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유권자 비중을 살펴보자. 60대 이상 고령인구가 31.4%다.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를 쥔 세대이자, 여당이 정성을 쏟고 있는 2030 청년층(28.8%)을 능가한다. 투표율도 60대 80%, 70대 78.5%로 시니어층이 2030세대보다 20%p 가량 높다. 제대로 된 실버공약은 여당의 약점으로 지목되는 4050 가운데 50대 초중반 장년층의 마음까지 잡을 카드다. 눈덩이처럼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늙고 병든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집스레 고수하고 있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그래도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고 불편함까지 감수하는 이면에는 늙고 병들어가는 어르신과 우리 자녀들의 건강까지 챙길 의사가 지역 곳곳에서 늘어난다는 기대감이 자리한다. 부동산시장에서 유행하는 ‘똘똘한 한채’와 같은 ‘실버공약 한방’은 못내 아쉽다. 사전선거를 앞둬 늦은 감이 있지만 본 선거 이전에라도 획기적 대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마저 힘들다면 총선 후 민생대책을 통해서라도 만회해야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있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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