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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론(反論)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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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11 09:01:39   폰트크기 변경      

선거가 끝났다. 선거는 설득과 선택의 과정이 생생하게 중계되는 심리전의 각축장이다.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승부처는 어디일까? 유권자가 모인 유세장을 빼놓을 수 없다. 한 후보자는 유세장에 들어 찬 주민들의 표정과 함성,악수의 느낌으로 당선의 윤곽이 가늠된다고 했다. 유세장은 후보의 정견과 정책을 들을 수 있어 표심의 발화점이 된다. 전국의 유세장에서 산발적으로 불붙은 민심은 사방으로 불길처럼 번져나가 몇 번의 회오리 바람과 돌풍을 동반하며 거세게 타오르다 마침내 풍향계의 방향타를 결정한다.


유세장의 하이라이트는 준비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연설이 아니다. 기자와 후보자가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연설 말미의 순간이다. 유세의 연장전 같은 이 시간은 각본이 없고 순간적이라 후보자의 평소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역 현안에 대한 구체성, 임기응변의 순발력, 초지일관의 진정성이 여과 없이 검증되는 것이다. 이때의 요령을 점검해야 후일을 대비할 수 있다.

먼저 핵심만 간추려 짧게 답해라. 대답이 길어지면 요점이 흐려지고 자칫 자랑이나 변명으로 탈색되어 본전도 못 뽑는 수가 있다.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키워드만 전달하겠다고 생각해라. 답변의 구성도 결론부터 먼저 말한 뒤 이유를 설명하는 두괄식을 권한다. 질문에 답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질문자는 심판관이 아니라 대리인에 불과하다. 참석자 모두를 배려하는 세련된 매너가 가점으로 변할 것이다. 질문자를 향하되 전체를 의식한 눈맞춤과 몸동작으로 유권자를 감성적 유대감으로 연결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생채기를 내려고 덤벼드는 비방성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수시로 꺼내 드는 것은 후보자가 당황해서 난기류에 빠져 허우적대야 뉴스거리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곤경에 빠뜨리려고 작심한 유도성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응대해야 할까? 먼저 반대 의견은 당연히 나올 것이라고 마음부터 다져야 한다. 예상 질문지를 뽑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감을 다지고 면역력을 키워라. 숙련공의 자격은 산전수전의 시행착오에서 주어진다.

여기에 좀 더 기술적인 방법 하나를 보탠다. 생각해보자.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유세장은 깜빡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창과 방패의 대결장이다. 누구라도 긴장에 빠져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약 상대의 질문지를 미리 볼 수 있다면 여유 있게 답안지를 내밀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의 의중 파악이 급선무다. 질문의 의도를 알아내면 적절한 대답을 들려줄 수 있다. 질문자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응답법은 없을까? 최근 어느 뉴스에서 그 본보기를 발견했다. 한 정당의 대표가 연설 중에 ‘상대가 당신이 개 같은 정치를 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자에게 질문을 받았다. 그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두어번 가량 “뭐라고 했다구요?”라며 되물었다. 시간을 버는 듯했다. 잠시 후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답변했다. “저는 개를 사랑합니다. 그러니 칭찬인 거죠? 부처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겁니다. 상세한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곤란한 질문엔 약간의 살을 붙여 한번 더 되물어서 상대의 심중을 확인할 시간을 마련해라.

내 경우도 그랬다. 20대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자는 제안에 대해 광고주가 대학생의 실구매력이 낮은 것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곧바로 되묻기 (Ask-Why)기법을 사용해서 이렇게 되물었다. ‘20대의 정보 전파력이 빨라 그들의 구전 효과를 노린 뒤 사회 초년생의 구매를 유도하는 단계적 접근법이 좋겠다고 설명했습니다만 혹시 부족하셨다면 다시 한번 질문해 주시겠습니까?’’ 라고 다시 질문했던 것이다. 질문을 돌려주는 순간 질문자가 답변자로 바뀐다. 청중을 의식하게 되어 처음보다 상세한 설명으로 속내를 드러내게 된다. 즉답을 하지 않아 침착하고 사려 깊다는 가외 소득도 있다. 사실 청중은 답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발표자의 태도나 행동을 보고 신뢰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방어적인 태도나 논쟁은 금물이다. 진지한 태도로 질문을 돌려주며 반격의 기회를 살펴라. 잘만하면 역전의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연설자가 펜과 노트를 준비해서 상대의 질문을 메모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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