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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일부는 나중에” 속여 건물 넘겨받은 임대인… 대법 “사기죄 처벌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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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10 10:25:36   폰트크기 변경      
1ㆍ2심 유죄→ 대법, 파기환송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임대인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임차인을 속여 건물의 점유권을 넘겨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재물을 내주거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어야 하는데, 임차인의 건물 점유권을 독자적인 재산상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사기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자신이 소유한 서울 영등포구 오피스텔을 보증금 1억2000만원에 B씨에게 임대했다. 이후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B씨는 일단 짐을 빼고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바꿨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투자 사기를 치고 다니던 A씨가 B씨에게 보증금 전부를 돌려줄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A씨는 “1일 이체 한도 문제로 일단 5000만원을 송금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송금하겠다. 새 임차인이 이사를 오기로 했으니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B씨를 속인 뒤 오피스텔 점유권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는 오피스텔 점유권 이전이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ㆍ2심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2심은 “A씨에게 잔여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B씨가 알았다면 오피스텔 점유권을 이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B씨가 오피스텔의 반환을 거절해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는데도 A씨의 기망행위에 속아 점유를 이전한 것은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B씨가 추후 나머지 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말에 속아 오피스텔 점유권을 A씨에게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1ㆍ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사기죄는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객체로 하는 범죄’인데, 오피스텔은 A씨 소유라 사기죄의 객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넘겨줬다고 해서 B씨가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재물을 점유하면서 향유하는 사용ㆍ수익권은 재물과 전혀 별개의 재산상의 이익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재물에 대한 사용ㆍ수익권은 형법상 사기죄에서 보호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는 B씨에 대한 사기 혐의와 함께 부동산ㆍ사모펀드 투자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1ㆍ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전체 판결을 파기한 만큼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형량을 정하게 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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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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