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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철옹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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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10 11:03:12   폰트크기 변경      
김태형 산업부 부장

김태형 산업부장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철옹성(鐵甕城)이 흔들리고 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경영철학과 탁월한 미세공정 기술로 40여년간 쌓아올린 단단한 성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 이야기다. 지난 5일 대만을 강타한 지진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절묘하게 흔들어놨다.

TSMC는 ‘미래산업의 쌀’로 불리는 고성능 반도체 칩을 위탁 생산한다. ‘AI 반도체 제왕’ 엔비디아와 ‘아이폰 제국’ 애플이 주 고객이다. 미국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에도 TSMC산 반도체가 들어간다. 인공지능(AI)과 하이테크 기기, 첨단무기 등에 쓰이는 시스템반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TSMC의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은 60%로 한국의 삼성전자(11.23%)와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5.8%)를 압도한다. 5년전 ‘TSMC 타도’를 내걸었던 삼성전자는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고, ‘원조 반도체 공룡’ 인텔도 TSMC에 막혀 지난해 파운드리에서만 9조원 넘게 적자를 봤다.

기업 가치가 투영된 시가총액(시총)을 보면 더 놀랍다. TSMC의 시총은 약 7273억달러(약 982조원)로 글로벌 상장기업 중 9위다. 지난해 연매출이 94조원으로 삼성전자(매출 약 300조원, 시총 504조원)의 3분의 1 수준인데도, 시가총액은 2배가량 높다.

대만에서 TSMC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이들은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 즉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부른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방어하는 ‘반도체 방패(Silicon Shield)’”라고 규정했다. 2년 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중국의 압박에도 대만을 전격 방문해 찾아간 곳이 TSMC였다.

그런데 25년 만의 강진이 TSMC를 흔들었다. 팹(공장)이 일시 중단되고 생산 중이던 일부 웨이퍼가 손상됐다. TSMC 공장 내 극자외선(EUV)ㆍ심자외선(DUV) 노광장비도 일부 손상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한국법인 소속 엔지니어들이 속속 대만에 투입되고 있다. TSMC가 지진 10시간 만에 “괜찮다”며 안심시켰지만 반도체업계는 고개를 갸웃한다.

개미 구멍으로 큰 둑이 무너지고, 덩치 큰 코끼리가 작은 생쥐에 놀라 자빠지는 법이다. 벌써부터 고객사들은 반도체 공급 차질을 우려한다. 지난 1999년과 2016년 대만 지진 때도 반도체 납품이 지연되고 세계 반도체 가격이 급등했다.

미국은 TSMC의 독점구조를 깰 기회만 엿보고 있다. 역사상 독점기업 쇠퇴 후 혁신기업이 탄생했다. 134년 역사의 반독점법으로 스탠더드 오일, AT&T가 수개로 쪼개졌다. IBM의 독점이 깨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탄생했고, 다시 MS가 공룡이 되자 윈도(운영체계)를 개방체제로 바꿔 구글과 애플이라는 세기의 빅테크를 탄생시켰다.

정복당하지 않는 철옹성은 없다. TSMC로선 헐거워진 틈을 수시로 메우고, 더 단단하고 혁신적인 성(城)으로 옮겨가야 적의 공세에 맞서 생존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엔 절호의 기회다. TSMC가 미국과 일본에 파운드리 공장을 세우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첨단 패키징 라인을 미국에 구축하려는 것도 같은 전략이다. 반도체 전쟁은 전선이 더 복잡해지고 훨씬 치열해지고 있다.

김태형 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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