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박흥순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의 사고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통계가 또 나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대재해법 대응력이 부족한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에서는 사고 예방보다 부작용만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이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의 사고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사진은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21일 국토안전관리원의 ‘건설사고 발생 현황 및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월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에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이후에도 사망사고 건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법 도입 직후인 2022년 1분기와 2분기에는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건수가 각각 22건, 21건으로 감소했으나 2022년 하반기 이후에는 시행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귀했다.
기간별 50억원 이상 건설현장 중대재해 발생 건수는 △2022년 3분기 24건 △2022년 4분기 27건 △2023년 1분기 25건 △2023년 2분기 33건 △2023년 3분기 32건 △2023년 4분기 31건이다.
오히려 법 적용이 2년간 유예됐던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 건수가 꾸준히 감소하면서 중대재해법과 사고발생 건수가 반비례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2022년 3분기 39건이던 50억원 미만 건설현장 중대재해 발생 건수는 △2022년 4분기 33건 △2023년 1분기 29건 △2023년 2분기 31건 △2023년 3분기 29건 △2023년 4분기 16건으로 줄었다. 4분기 기준으로 1년만에 사고발생 건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은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24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됐다.
중대재해법은 안전조치 미흡으로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동안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이 사고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 50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을 때도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연기를 추진하는 것은 죽고 또 죽는 죽음의 일터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지 3달째에 접어들었음에도 사고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 2월부터 현재까지 하루 한 건 가량의 중대재해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13일 경기 화성시에서 도로표지판 설치 공사를 하던 재해자가 넘어지는 표지판 기둥에 맞아 숨졌고, 이보다 앞선 9일에는 경기 안성시에서 전원주택 신축공사를 하던 작업자 3명이 지하 기계실 바닥 방수제 도포 작업을 하다가 급성중독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예방보다 처벌에 중점을 둔 법안으로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 통계”라며 “중소·영세 건설현장이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법을 예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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