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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차 없는 거리’…오토바이ㆍ킥보드ㆍ무단횡단 ‘횡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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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26 05:40:12   폰트크기 변경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취지 무색

시들해진 상권에 배달 매출 의존
서대문구ㆍ상인들 지정 해제 요청
서울시 “상징성ㆍ보행권 고려해야”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거리에서 통행이 금지된 오토바이가 별다른 단속이 없이 지나가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장사도 안 되는데 배달 오토바이라도 좀 자유롭게 들어오면 안 되나요?”

김지명(가명) 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장사한 기간까지 합치면 40년이 넘는다. 그는 1980∼1990년대 신촌이 명동과 종로에 이어 강북 3대 상권으로 불리던 호황기를 기억한다. 신촌 토박이인 그에게 이곳은 “업종 불문하고 가는 상점마다 사람이 넘쳐나는 거리”였다.

요즘은 장사할 맛이 전혀 나지 않는 거리다. “돌이켜 보니 차 없는 거리 시행 이후부터 유동인구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어요. 원래 저희 가게의 주 손님들은 연세 세브란스에서 근무하시는 40∼50대 의료진이나 직원분들이셨죠. 그런데 차가 못 들어오고, 택시도 부르기 힘드니 단골들의 발길이 끊기게 된 거죠.”

연세로는 2호선 신촌역부터 연세대 정문까지 이르는 550m 구간이다. 2014년 1월 서울에서 처음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돼 버스와 16인승 이상 승합차 등만 통행이 허용됐다.

상인들은 지속적으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2022년 8월에 김 씨도 연세로에 모든 차량 통행을 허용해달라는 ‘상인 1984명 탄원서’에 서명했다.


버스 등만 통행이 허용된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그 뒤로는 한 행인이 도로 위를 걸어가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기자가 연세로에서 만난 상인들은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라고 입을 모았다.

신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소정(가명) 씨는 “카페 매출의 절반 정도가 배달 수익인데, 오토바이가 지나다니지 못해 우회하다가 배달이 늦어지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배달기사분들에게 뒷길로 돌아오시라고 말해드렸지만, 요즘은 앞길로 그냥 지나다니는 걸 어쩔 수 없이 묵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배달 물량이 몰리는 점심시간 때인 낮 12시 이후 연세로를 우회하지 않고 통행하는 오토바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10분 동안에만 20∼30대가 넘는 오토바이가 연세로를 가로지르거나 버스와 같은 차선에서 달렸다.

같은 시간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일반 승용차나 전동킥보드도 이곳을 자연스럽게 지나다녔다. 무단횡단을 하는 시민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들의 통행을 단속하는 경찰이나 공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8일 오후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킥보드를 탄 사람이 차도 위를 달리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서대문경찰서 교통과 관계자는 “연세로는 경찰서 담당 구역이 맞지만, 상주하면서 통행을 단속하기에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라며 “현재로선 신고가 들어올 때만 나가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대문구의 요구에 따라 서울시는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일시 해제하고 승용차와 택시 등 일반차량의 통행을 허용했다. 시는 당초 이 기간 동안 보행 환경, 인근 상권 매출과 교통 흐름 등을 분석한 후 작년 9월 말까지 해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방침을 바꿔 지난해 10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재지정했다.

차량 통행이 전면 허용된 3개월(2023년 2∼4월)과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부활한 3개월(2023년 11월∼2024년 1월)의 매출액 변화 등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게 시의 입장이다.


신촌역 2번 출구 앞 연세로에 위치한 한 상가가 비어있다. 이곳은 1980∼1990년대 명동과 종로에 이어 강북 3대 상권으로 꼽혔던 곳이지만, 최근에는 상권이 쇠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서대문구는 반발하고 있다.

“KB 카드사의 데이터를 토대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재시행 이후 점포당 일 평균 매출액이 6.1% 감소했다. 연세로 차량 통행이 허용된 기간동안 ‘전체 매출액’ 증가율이 22%인 것과 대조된다”라고 구는 반박했다.

시 관계자는 “비교 기간이 코로나가 끝난 시점과 대학교 신입생 입학 및 개강 시점 등이 겹쳐 있다”라며 “보복심리와 성수기 특수로 매출이 증가했다가 이후 다시 줄어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서울에서 연세로가 유일하고, 10년 넘게 시행해온 만큼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라며 “해제를 위해서는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학생들을 설득시킬 명분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해 침해될 수 있는 ‘보행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인근 구역에 전용지구를 새롭게 지정하거나 보완하는 방안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설명이다.

현재 시는 자체적으로 매출 및 교통량 등을 비교한 데이터를 분석 중이다. 시 관계자는 “마지막 데이터인 2024년 1월 자료가 다음달에 나올 예정”이라며 “이후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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