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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춘천 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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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29 06:00:20   폰트크기 변경      
청춘ㆍ추억ㆍ인연이 남은 곳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춘천은 웬지 낯설지 않다.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 때문일까. 대학 시절 MT 때문일까. 아련한 추억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곳이 춘천이다. 이제는 레고랜드 같은 관광지가 새로 생기고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도시의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여전히 춘천이라고 하면 소양호, 남이섬, 춘천MBC와 막국수, 닭갈비가 떠오른다. ‘春川’은 봄처럼 새롭고, 봄처럼 아련하게 흐른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ITX 청춘 / 사진 : 코레일 제공


‘ITX 청춘’이라는 열차 이름은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고 한다. ITX는 ‘Inter-city Train eXpress’의 약자다. ‘청춘’이라는 이름을 그저 청량리역과 춘천역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다면 다소 김이 빠진다. 중의법과 깊은 뜻이 없었을리 없다. 우리 세대에게 경춘선은 청춘의 이미지다. ITX 청춘이 없던 시절에도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탔다. 열차 안에서 게임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서 ‘민폐’를 끼쳐도 젊음의 특권을 눈감아 주던 시절이었다.

용산역에서 ITX 청춘에 올랐다.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용산역에 내리면 플랫폼을 바꾸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ITX 청춘으로 갈아탈 수 있다. 개찰구를 통과할 필요가 없는 대신 플랫폼 곳곳에 설치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어 하차 처리를 해야 한다. 열차를 타니 ‘이 열차는 일반 지하철이 아닙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된다. ‘잘못 타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실수로 가게 된 춘천’도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열차 뒤쪽 일부는 이층이다. 이층버스는 봤어도 이층기차는 처음이다. 지나는 풍경,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이층 좌석으로 예약하자. 용산에서 청량리, 남춘천을 거쳐 춘천까지 1시간20분 정도를 달린다. 열차에 따라 평내호평, 가평, 마석, 청평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모두 젊은 시절 한번쯤은 가봤던 낯익은 이름이다. 지금 대학생들에게도 이 노선은 단골 MT 라인이다. 경춘선은 여전히 청춘이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이디오파아 벳’ 카페 현관에 있는 안내판.



춘천 공지천 옆 ‘이디오피아 카페’라고 기억했는데 다시 가보니 ‘이디오피아 벳(Bet : 집)’이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6000명을 파병했다. 이를 기려 1968년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기념탑을 준공할 때 이곳에 온 하일레 슬라세 에티오피아 황제가 주변 이 카페의 이름을 지어주고 에티오피아 원두를 보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2만 일이 넘도록 커피향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도 에티오피아 원두로 만들고, 예가체프와 시다모 같은 핸드드립 커피들이 다양하다. 온 김에 맛보고 싶지만, 커피 문외한에게 선택이 쉽지 않다. 일행들은 아메리카노와 라떼, 예가체프, 시다모 등을 골고루 시켜서 음미했다.

그런데 오래 전 기억은 이와 다르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았던 시절, 그때 난 이곳에서 무슨 커피를 마셨을까. 다방커피는 아니었겠지만, 모를 일이다. 추억은 희미하다. 창밖 공지천과 카페 내부도 예전 모습 그대로인 듯 낯익지만, 이 또한 그대로일 리 없다.


구봉산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춘천


요새 춘천의 카페 핫플레이스는 구봉산이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골목은 아니고 도로 주변으로 꽤 널찍하고 ‘신경 써서’ 지은 카페들이 거리를 두고 이어진다. 스타벅스도 보이고 산토리니처럼 관광지가 된 카페도 있다. 구봉산에서 내려다보는 춘천의 풍경이 입소문 나면서 카페들이 차례로 자리 잡았다. 밤에는 더 아름답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초록의 봉의산이 참 예쁘다. 산 중턱 한림대학교와도 잘 어울린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언급된 성심여자대학교가 지금의 한림대 자리에 있었다.


구봉산 카페에서 내려다 본 풍경. 멀리 봉의산이 보인다.


‘끝없는 철길 위에’

1939년 개통된 옛 경춘선은 2010년 경춘선이 전철로 새로 깔리면서 멈춰 섰다. 그렇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레일바이크가 철길 위를 달린다. 이제 기차는 지나지 않고 속도도 줄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유정역∼강촌역, 가평∼경강역 등의 코스가 있다. 김유정 레일바이크 탑승장은 김유정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는데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 북한강을 보며 달리는 구간에서는 가슴이 뻥 뚫린다. 여러 개의 터널도 지나는데 조명과 비눗방울, 바람개비, 음악이 곳곳에서 가는 길을 응원한다.


벚꽃 터널을 지나는 가평 레일바이크 / 사진 : 강촌 레일파크 제공



낭구마을 휴게소에서는 낭만열차로 갈아탄다. 북한강을 바라보며 달리는 풍경이 아름답고 예쁘장하게 꾸며 놓은 열차에 대한 만족도도 좋은 편이다. 요즈음 같은 날씨에는 바깥 자리도 좋다.


김유정역 바로 옆에는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복원한 김유정의 생가와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김유정은 29세에 요절했지만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 ‘봄ㆍ봄’에서 주인공인 나는 마름의 어린 딸과 혼인하는 조건으로 머슴살이를 하지만 점순이는 좀처럼 키가 자라지 않는다. 다른 대표작 ‘동백꽃’에서 나를 괴롭히던 점순이는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 속으로 나랑 ‘푹 파묻혀버린다.’



김유정 생가에서 올려다본 초가 처마


그런데 소설 속 등장인물이 실제인물을 모델로 삼았고, 소설 속 장소도 그의 고향마을인 이곳이라고 한다. 농담 같은 그의 짧은 소설과 등장인물을 생각하다가 올려다본 초가 처마 사이 푸른 하늘이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닭갈비 골목은 여전하다. 도로포장이나 식당 내부는 기억과 다르게 깔끔해졌지만, 이곳에 왔던 기억을 되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옛모습이 남아 있다.


춘천 명동닭갈비골목 조형물


양배추 값이 올라 닭갈비에 들어가는 양배추 량이 줄었다고 하더니, 닭고기가 양배추보다 훨씬 많은 듯도 하다. 좋아해야 할까.


대신 춘천 출신 지인이 춘천 사람들이 먹는 방식이라고 추천해준 대로 우동사리를 섞었다. 또 다른 별미다. ‘강원맥주’니 ‘닭갈비어’ 같은 지역 맥주들을 많이 판다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양배추가 빠진 자리를 우동사리가 대신한 춘천 닭갈비



춘천에서는 막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에서 파는 막국수보다는 덜 ‘새콤달콤’한데 나한테는 심심하지만 깊은 맛이었다. 50년이 넘었다는 노포에서 직접 만든 메밀묵과 막국수는 서울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맛이다. 오로지 이 맛을 보러 다시 춘천에 올 것도 같다.


막국수, 메밀만두(왼쪽)와 메밀묵 


세종호텔에 짐을 풀었다. 강원도청 뒤편에 아담한 정원을 갖춘 이 호텔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낡았다’라는 혹평과 추억 돋는 ‘빈티지’라는 평이 반반이다.


이 호텔은 얼마 전 방영된 ‘킹더랜드’라는 드라마에서 본사 직원들의 ‘유배지’로 나오기도 했다. 오너의 아들인 구원 본부장과 사랑에 빠진 천사랑도 이곳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호텔 뒤 작은 숲, 주변에 숨겨진 맛집, 밤하늘 촘촘한 별들을 사랑한다. 결국 그런 장점들이 호텔을 살리게 된다는 에피소드로 나온다.


고풍스러운 춘천 세종호텔 입구


실제 호텔에서는 오래된 가전제품과 침대 머리맡 성경책, 알록달록 촌스러운 연필이 꽂혀 있는 메모지들을 만날 수 있다. 빈티지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욕실에서 바로 나오는 ‘옥정수(玉井水)’도 호텔의 자랑이다.


한가지 더. 특급호텔이 없는 도시라 과거 대통령이 춘천에 오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이곳을 방문한 전 대통령들의 사진이 호텔 한 쪽에 걸려 있다. 과거의 영광이라고 할까.


세종호텔 한쪽 벽에는 이곳을 방문한 대통령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1박2일 일정은 먹고 마시다 보면 금방이다. 추억하기에도, 새로 보기에도 짧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한 춘천의 짧은 하루도 나중에는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다. 추억은 인연처럼 쌓이고 인연은 또 추억이 된다. 가을에는 느긋하게 시간을 내서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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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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