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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생활정치 공간 ‘지구당’ 부활 적극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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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31 04:00:10   폰트크기 변경      

2004년 불법정치자금을 향한 국민 여론의 따가운 시선 속에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치자금법과 정당법이 개정됐다.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가 금지됐으며, 지구당이 폐지되고 중앙당과 시·도당만 남았다.


지구당을 대신해 지역에 당원협의회를 둘 수 있다고 하나 유급사무직원을 둘 수 없고 활동을 뒷받침해 줄 후원금도 모을 수 없기 때문에 온전하게 대체한 조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요즘 간판을 내건 국회의원 지역사무실은 다음 선거의 재신임을 위해 설치한 개인 사무실 성격이 강하다. 선거 120일전부터 운영할 수 있는 정당선거사무소는 선거를 위한 당원 동원 등에 국한된 소모적 활동에 집중한다. 여전히 지역정치와는 괴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지구당은 선거와 관계없이 지역의 정치세력을 규합하고 당원 활동을 통해 정치교육과 홍보활동, 조직관리 등을 담당했다. 지역의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자들을 테이블로 이끌어 토론과 회의를 통해 일정한 공감대를 도출하면 시도당을 거쳐 중앙당에 전달함으로써 상향식 정치 형성 과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지방자치시대에 주민의 집단 민원사항을 일선 시군구 단위의 공무원 조직에만 의존하여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이 참여하는 지역 당ㆍ정 협의회를 개최해 그들에게 정무적 판단과 선택을 요청하게 되면 지역주민의 요구사항이 효율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되기도 했다.


이러한 지구당은 정치개혁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정치 수요와 변화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적인 단위로 발전시켜야 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충분한 검토 없이 불법정치자금의 유통경로이자 온갖 정치적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뒤집어 씌워 폐지하고 만 것이다.


지구당 폐지는 생활정치의 공간을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교육비에 등골 휘는 학부모, 지역경제 붕괴를 걱정하는 동네 상점 주민,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주거환경 악화를 겪는 이웃, 소외된 장애인과 생계를 위협받는 저소득 노인, 발언의 기회를 찾지 못하는 청년, 차별에 항의하는 성소수자와 철거민 등이 정치적 결사체를 결성해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합법적 공간이 지구당이었다.


거대 현안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지역의 문제를 쏟아부으며 사뭇 진지하게 절충안이나 대안을 찾아가는 공간도 지구당이 일정 부분 제공하고 있었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불같은 정치적 의사표현과 약간은 사나운 실력행사가 일어나면서도 차츰 안정을 되찾고 어느 정도의 대리 만족을 얻고 갈 수 있는 공간도 지구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구당은 홀로 떨어진 조직체가 아니라 중앙당 및 시도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당헌과 당규에 따른 일정한 규율 속에 토론의 방식을 참가자가 준수토록 하고 그 결과와 합의를 존중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동네 일꾼을 발굴하고 정치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차세대 지방정치인으로 육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구당을 정치의 상향적 통로로서 더욱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폐지해 버린 결과는 소수의 극렬 팬덤과 지역유력자만 남아 있는 모습이다. 정치 참여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중도층 움직임은 잦아들고 강경 목소리만 요란한 셈이다.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당을 없앴다고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지구당을 겨냥한 비판 중에는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역정치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민주성에 기여하는 공익성을 비용 관리 측면에서만 평가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에서 ‘돈 먹는 하마’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에서 담당할 일이지 정당법에 전적인 책임을 돌릴 일도 아니다.


최근 민주당에 이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지구당 부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구당이 가진 기본역할과 조직원리를 감안하여 제대로 순기능할 수 있게끔 보완과정을 거쳐 지역 생활정치의 공간으로서 부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문성 칼럼니스트(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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