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상 조각의 선구자 김영원 전 홍익대 미대학장 (77)은 1950~60년대를 풍미했던 추상 조각 운동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실주의적 인체조각으로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자아'를 표현해 온 작가다. 1970년대부터 '기공명상(氣孔冥想)' 을 예술적 화두로 제시한 그는 1994년 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K-조각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1970년대 후반 불안한 시대의 인간초상을 형상화한 '중력 무중력'연작, 1980년대 소외된 인간의 소통을 묘사한 '생명'시리즈, 2000년대 이후 '그림자의 그림자'시리즈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김영원의 ㄱ'그림자의 그림자' 사진=청작화랑 제공 |
1970년대 중반부터 공공미술프로젝트로 광화문에 설치된 세종대왕상, 청남대의 역대 대통령 동상,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의 거대한 인체 조형물 등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내년에는 김해시가 주관한 김영원 조각공원과 미술관이 개관될 예정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대규모 초대전이 지난 13일 시작해 오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창작화랑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기공명상(氣孔冥想)'. 사유구조(思惟構造)에 반(反)하는 기(氣)의 흐름에 따라 반응하는 몸짓과 직관에 의한 흔적을 예술로 승화한 근작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 등 10여점과 명상예술(Art of Qiosmosis)을 퍼포먼스로 그려낸 ‘순간적 회화'도 함께 내놓았다.
김영원의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 사진=청작화랑 제공 |
그의 작품은 대중 음악처럼 제목이 쉽고 재질도 단순하다.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산업사회의 굴절되고 해체된 인간상을 형이상학적인 미감으로 되살려낸 작품. 군더더기 같은 이미지를 제거하고 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내재율을 중시했다. 현대인들의 과도한 욕망을 이기론의 형태로 풀어낸게 이채롭다.
또한 그의 조각 작품에는 호방한 심기(心氣)와 짜릿한 인심도심(人心道心)이 함께 묻어난다. 인간들이 그림자처럼 자유를 향해 일어서는 가하면 마치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는 경계상에서 인간의 영혼이 깨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율곡의 이기론까지도 매끄러운 표면 사이로 흐른다.
김영원의 회화 작품. 사진=청작화랑 제공 |
김 전 교수는 "이번 전시에 출품작들은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쳐 50년 만에 안주한 나의 작품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보다 간결하고 순수한 형식미가 두드러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홍익대 재학시절 이병철 삼성 회장의 눈에 띄어 작품을 의뢰받을 만큼 재능을 보인 그는 굵직한 공모전과 상을 휩쓸었다. 1990년 선미술상, 2002년 김세중 조각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제1회 김복진 미술상을 수상하고 2000만원의 상금 전액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2011년에는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을 맡아 한국 조각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김경갑 기자 kkk10@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