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찰스스터드대학교 교수인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2018년 호주의 정치와 경제 및 시민사회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 확대과정을 적나라하게 기술한 책 ‘중국의 조용한 침공’을 출간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장기간의 심층 연구결과를 담은 저서를 통해 저자는 호주 국민들의 각성을 불러왔으며, 대 중국 정책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중국이 호주 이상으로 노리는 국가일 것이라며 각별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해밀턴 교수의 경고가 아니라도 중국은 우리에게 여러 측면에서 지속적인 위협이 돼 왔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자구책인 사드배치에 대한 강압적 협박에서부터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왜곡, 한복과 김치 등등의 문화침탈, 첨단기술 탈취와 안보위협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최근에 더욱 심각하고도 구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중국의 제조굴기, 테크굴기이다.
중국은 이미 2015년부터 첨단산업국으로의 변모를 목표로 ‘제조 2025’ 계획을 수립하여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대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인재유치와 기술개발 등의 전방위적 지원을 통해 첨단산업을 육성하였다. ‘제조 2025’는 단순히 제조역량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부품.소재에서부터 완제품까지의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완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첨단기술과 막강한 제조역량을 갖춘 산업대국으로 부상하였으며, 14억 인구의 거대시장을 바탕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나아가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한 덤핑수출은 전세계 산업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알리, 테무 등을 통해 중국의 저가 제조역량에 놀라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이미 여러 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시장 덕분에 호황을 누려왔던 석유화학산업은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태양광과 철강산업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 왔던 2차전지와 디스플레이, 조선 등의 산업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으며, 미래산업인 AI와 로봇, 자율주행 등의 분야에서는 이미 한참이나 뒤져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반도체산업은 미국의 강력한 견제를 통해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중국에게 추월당할지 모르는 실정이다.
이처럼 중국의 제조, 기술 굴기가 무서운 상황이지만, 정작 더 두렵고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안이한 대응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등한시하고 정쟁에만 골몰하는 우리 정치의 폐습으로 인해 전 국민의 역량을 모아 총력 대응해 나가도 모자랄 상황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조차 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을 통해 자국산업을 키우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고, 세계 각국이 중국의 덤핑수출에 고율관세 부과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마저도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산업 부활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24시간 돌관작업을 통해 2년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냈다. 지만, 우리는 2019년 초에 착수한 용인 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가 이제 겨우 부지조성공사 중으로 6년째인 내년 봄에나 건물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대만은 대만인들의 자부심이자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업체인 TSMC에 원활한 전력공급을 위해 야간소등까지 한다지만 우리 기업들은 지원은커녕 반기업 정서와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여 있다.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자 주력산업의 대부분이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중국의 첨단산업과 기술 굴기는 그대로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위협은 이미 문턱을 넘어 안방으로 밀어닥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중국산 전기차와 로봇 등에 점령당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이 정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치권과 무기력한 정부를 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참으로 커지는 요즘이다. 과연 우리 자녀들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이형주 (사)건설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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