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유럽 화단에서 발호한 근대미술은 1970대까지 거의 100년을 관통한다. 야수파를 필두로 표현주의,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가히 백가쟁명의 양상을 띠며 한 시대를 수놓았다.
이런 근대미술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유입됐다. 당시 한국은 사실상 미술문화의 불모지였다.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역사를 갖춘 훌륭한 지리적 요건에도 전시공간 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근대 서양미술을 어떻게 한국 특유의 근대적 가치를 정립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한국적 미술 토양을 만들어내는 게 우선 급했다.
12억원부터 경매를 시작하는 박수근의 '농악' . 사진=케이옥션 제공 |
박수근을 비롯해 박고석, 윤중식, 김인승, 최영림, 임직순, 권옥연 등이 한국 근대미술의 색다른 조형을 일구는데 뛰어들었다. 사실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색채와 형태의 순수성에 주안점을 두고 각기 다른 기법을 창출해 나갔다. 이들은 1970년대까지 한국의 근대화단이 온전히 자리잡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거치며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한국 근대미술의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이들 8명의 득의작은 물론 국내외 유명미술가들의 수작, 희귀한 고미술품들이 대거 경매에 쏟아져 나온다.
메이저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이 오는 26일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여는 6월 경매를 통해서다. 출품작은 모두 125점이며, 추정가치만도 104억원에 달한다.
최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내리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금과 미술품, 달러 같은 안전자산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유명미술가의 작품을 낙찰받아 투자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림 비중을 확대해 볼만하다.
케이옥션의 이번 기획 경매의 ‘눈요기’는 뭐래도 ‘근대를 수놓은 작가’ 8인의 명작들이다.
박수근의 1962년작 ‘농악’이 경매에 부쳐진다. 농사일을 끝내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는 모습을 화감암처럼 당차게 되살려낸 역작이다. 단순한 농촌의 풍경을 넘어 한국 전통 문화의 단면을 단번에 응축한 게 이채롭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박수근 회고전에 출품돼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12억원부터 경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고전적 사실주의와 한국적 아카데미즘의 원형을 확립한 도상봉의 작품 ‘정물’도 눈길을 끈다. 평생 사랑했던 백자를 화폭에 은은한 빛깔로 묘사한 작품이다. 차분한 붓 터치로 그린 과일이 백자와 멋들어지게 어울린다. 소박하고 담백하며 격조 있는 아름다음을 지닌 이 작품의 추정가는 3000만~ 8000만원이다.
전국의 명산을 찾아 사계절을 화폭에 담아낸 박고석의 그림‘치악산 풍경’도 출품됐다. 산세와 풍경을 강렬한 색감과 두터운 붓질로 되살려낸 작품이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강렬한 색채와 두터운 질감을 표현한 그림에서는 힘과 탄력이 넘쳐난다. 추정가는 1500만~3000만원이다.
김인승의 ‘정물’ 사진=케이옥션 제공 |
황혼녘을 즐겨 그렸던 윤중식의 ‘어항이 있는 정물’(1000만~4000만원), 한국적 인상주의 화가 김인승의 ‘정물’(1500만~3000만원), ‘토속과 해학의 작가’로 불리는 최영림의 ‘여와 소’ (3000만~1억5000만원), 색채화가 임직순의 ‘7월의 여인’(1400만~7000만원), 권옥연의 ‘풍경’(1500만~4000만원) 등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입찰대에 오른다.
20세기 미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 사진= 케이옥션 제공 |
해외 부문에는 20세기 미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3~4억원)가 단연 돋보인다. 인디애나는 1960년대 초부터 ‘LOVE’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낳은 팝아트계의 대중 스타로 군림해 왔다. 자칭 ‘미국 간판장이’라는 그는 미국적 정체성, 개인의 이력, 추상적 개념, 언어의 힘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흐름에 영향력을 끼쳤다.순수미술과 상업디자인을 혼합한 ‘LOVE’ 시리즈는 인디애나가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 역시 의도적으로 빨강, 청색, 녹색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사랑(LOVE)을 부각시켰다. 세 개의 색깔을 활용한 이 작품의 희소성 때문에 벌써부터 뜨거운 입찰 경쟁이 예상된다.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로네의 작품(2~4억원), 안나 박의 ‘She Never Calls’(8000만~1억5000만원), 마리 로랑생의 ‘앉아있는 젊은 여인‘(6000만~1억2000만원), 탐 웨슬만의 ’장미와 배가 있는 정물‘(5000만~1억 5000만원)도 경매에 오른다.
이 밖에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같은 거장들의 작품과 시장을 꾸준히 이끌어가고 있는 이건용, 이배, 이강소, 전광영 그리고 우국원, 옥승철, 아야코 록카쿠, 에가미 에츠 등 국내외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출품됐다.
출품작들은 경매가 열리는 26일까지 강남구 케이옥션 본사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관람은 예약 없이 무료로 가능하다. 경매에 참여할 경우 케이옥션 회원으로 가입한 후 서면이나 현장 응찰, 전화 또는 온라인 라이브 응찰할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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