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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러 밀착과 질서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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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20 05:00:26   폰트크기 변경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관계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동맹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두 국가가 동병상련의 ‘전투적 우의’와 ‘혈연의 유대’를 과시하여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우주발사체 기술 등 첨단무기개발과 관련한 기술을 제공하고 있어 북러 밀착은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핵심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북한은 양 정상의 “전략적 결단과 영도 밑에 불패의 전우관계, 백년대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더욱 승화발전되고 있다”면서 “현시기 조로인민은 자주와 국제적 정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준엄한 투쟁의 한전호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고문을 통해서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수립하는데 저애를 주려는 ‘서방집단’의 요구를 견결히 반대해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미국의 ‘이중기준’과 ‘규정에 기초한 질서 강요’를 강하게 비판했다(로동신문, 6월 18일).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상호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면서 “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불가분리적인 안전구조를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북한과 ‘전투적 연대성’을 강조했다.

서방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북한이 ‘한전호’에서 공동전선을 폄으로써 북핵문제 해결과 우크라이나전쟁의 종식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승자가 북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궁지에 몰린 북한을 구원한 것은 러시아다. 북한은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포탄과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에너지, 식량, 첨단무기개발 기술을 제공받음으로써 장기생존의 발판을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북한이 ‘신냉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극화된 세계질서 수립’(러시아), ‘다극화된 새 세계건설’(북한)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얼마 전까지 북한은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사이의 대결구도를 염두에 두고 정세를 관리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신냉전 구도에 얽히는 것을 거부하자 미중 전략경쟁을 활용한 신냉전 구도로 세계를 나누기 어렵다고 보고 다극화 질서를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핵·미사일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어 중국의 심기는 불편할 것이다. 북러정상회담이 열리는 기간에 한중 차관급 외교안보대화가 이뤄진 것은 지금의 북중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이 신냉전 구도에 얽힐 어떠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중국은 서방세계와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중시하고 있고, 미국 중심의 ‘규칙기반질서’ 구축 움직임에 맞서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사우스(남반부에 속하는 개발도상국, 구 제3세계와 비동맹권)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냉전시대 북한은 중소 등거리 정책을 추진했다. 한소수교와 한중수교 이후 북한은 중소와 소원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중소가 남북한 등거리 정책을 추진한 것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 전략전술적 소통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의 러시아 중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하면서 ‘한가족’, ‘한참호’란 표현으로 중국과의 유대를 강조했다. 그랬던 북한이 지금은 러시아와 ‘한전호’, ‘혈연의 유대’를 강조하며 장기관계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북러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친다. ‘오물풍선’에 집중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정세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국익중심의 외교안보정책을 초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前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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