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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조약, 예상보다 높은 수위…냉전시대 회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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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20 17:29:57   폰트크기 변경      
내달 나토·아세안포럼서 ‘각축전’ 예고…‘약한고리’ 중국 행보 주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금수산영빈관 정원구역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친교를 다졌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ㆍ연합

[대한경제=강성규 기자] 북한과 러시아가 사실상 ‘자동 군사개입’으로 해석되는 조항을 포함,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군사 협력 방안이 담긴 조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정세가 ‘냉전시대’로 회귀한 수준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전문을 공개했다.

북러는 조약 4조에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ㆍ러시아)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또 제3조에서 한 나라에 ‘무력침략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면, 위협 제거를 위한 협조 조치를 합의할 목적으로 협상 통로를 ‘지체없이’ 가동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 체결로 북러 관계 설정은 냉전시대인 1961년 양국 간 우호조약으로 회귀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조약이 폐기된 1996년 이후 28년 만에 냉전시대 수준의 ‘군사동맹’이 구축됐다는 의미다.

당시 북한과 러시아 전신인 소련이 맺은 ‘조ㆍ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조ㆍ소 동맹조약)’ 제1조에는 “체약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됐다. 이번 조약의 4조와 거의 동일하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밀리게 되면 푸틴 정권의 존립이 흔들린다”며 “푸틴 대통령은 무기 확보가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외부의 예상보다 훨씬 군사협력 수위가 높은 조약을 체결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금수산영빈관에서 회담이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ㆍ연합

또한 북러는 ‘유엔 헌장51조에 준하여’ 등의 내용을 포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 등 이번 조약에 위법 사항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ㆍ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조항이다.

전문가들은 북러가 이 같은 조항을 활용,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무기ㆍ군사 지원을 본격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러가 조약에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러시아 본토 공격용 무기 지원이 임박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러시아의 의도가 담겼다”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침략행위로 간주하면 북한은 이번 조약에 근거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북러가 한미 및 한미일 공조를 의식, 이에 대응하는 공조 체계 구축을 도모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이번 조약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조항과 유사한 내용들이 있다”며 “이는 북러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미 조약을 참고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한미가 구축한 확장억제, 이른바 ‘핵우산’에 버금가는 군사 공조 체계를 구축할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러시아의 대북 핵우산이 현실화돼 한미가 실질적으로 이를 염두에 둬야 할 가능성까지 생기면 정세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러 초밀착 관계가 형성되며 한미일을 위시한 국제사회 공조 및 대립 구도가 한층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심인 ‘나토’ 정상회의와, 한미일ㆍ북중러가 모두 모일 가능성이 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이 내달 잇따라 열려 치열한 외교 각축전이 벌써부터 예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중러 공조에서 ‘약한 고리’로 꼽히는 중국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이 북러의 군사적 결집에 본격적으로 가세해 한미일과 맞선다면 동북아 긴장 수위는 크게 높아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중국은 북중러로 한 데 묶이는 데는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과 관계 회복에 공을 들이면서 북러 협력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성규 기자 g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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