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5일 순환정전을 겪으면서 슬로건을 피부로 체감했다. 전력예비력이 간당간당하면서 그해 겨울은 물론 이듬해 동하절기마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였다. 30℃를 웃도는 날씨에도 공공기관은 에어컨을 맘껏 켜지 못했고, 에어컨을 튼 채 출입문을 열고 호객하는 상점은 단속을 맞았다.
슬로건은 지금도 유효하다. 전력예비력은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글로벌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해 전력생산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전력은 전력을 매입하는 도매가격(SMP)이 판매하는 소매가격(전기요금)보다 비싼 역마진 구조에 빠져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 전국을 휩쓴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직접 발표했다. 최대 140억배럴로, 천연가스는 29년, 석유는 4년 이상 사용할 양으로 예측된다는 설명이었다. 140억배럴은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110억배럴)보다도 많은 자원량이다.
발표 직후 탐사 분석 업체의 신뢰도, 호주 최대 석유 개발사의 철수, 만만치 않은 시추비용 대비 효과 등의 의혹과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산유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국민 된 도리라고 본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국면전환용 발표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지만, 가능성도 없는 거짓 분석을 가지고 대통령이 직접 나섰겠는가.
20여일이 지난 지금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석유공사는 이미 노르웨이 업체와 시추선 임대 등 다수의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12월 7개의 유망구조 중 1곳에 탐사 시추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추 착수비 100억원도 확보했다. 또한, 석유공사는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과 접촉 중이며, 국내 에너지기업들도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탄소중립이다. 지난 2021년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탄소배출 제로)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해외 환경단체에서는 한국의 NDC(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개발에 성공할 경우 NDC 달성은 더욱 요원해진다.
그렇다고 앞마당에 금맥을 캐지 않고 묻어두는 것은 국가적 이익에 반한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는 멀게는 70∼80년대 석유파동에서부터 최근의 에너지 가격 폭등까지 글로벌 변동성에 속절없이 휩쓸려왔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라도 대왕고래의 꿈이 현실이 되길 빈다.
건설기술부장 hoony@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