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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칼럼] 자본시장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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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7-05 06:00:10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권해석 기자]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뒤에는 스페인 왕실이 있었다. 콜럼버스는 항해 비용 마련을 위해 포르투갈과 스페인 왕실을 돌며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포르투갈 왕실은 거절했지만,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에서 나오는 수익의 10%만 갖겠다는 콜럼버스의 제안을 수용해 항해비용을 지원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유럽에서 이른바 모험자본의 공급은 왕실만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콜럼버스의 지리상의 발견 이후 상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모험자본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바렌츠도 북극항로 개척 비용을 시장에서 조달했다. 바렌츠는 북극 바다를 이용하면 아시아에 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북극 항로 개척에 나섰다. 1차와 2차 항해는 네덜란드 정부가 지원했다. 하지만 2차례 도전이 모두 실패하자 네덜란드 정부는 추가 항해 비용 지원을 거절했다. 바렌츠의 1596년 3차 항해 비용은 암스테르담 상인들이 돈을 모아 마련했다.

3차 항해도 성공하지 못했다. 바렌츠의 배는 북극 얼음 한 가운데 갇히게 되고, 바렌츠는 목숨을 잃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바렌츠는 선원들에게 상인들이 맡긴 화물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선원들도 이 명령을 따르면서, 상인들의 화물은 온전하게 보전이 됐다.

당시 바렌츠의 항해 과정은 오늘날 기업과 비슷한 점이 많다. 바렌츠가 민간 자본으로 구입한 배가 회사며, 바렌트는 회사 대표로 볼 수 있다. 선원은 직원이고, 돈을 댄 상인들은 주주다.

바렌츠는 주주인 상인의 물건을 끝까지 보호하면서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뒀다.

신용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 바렌츠의 행동은 신선한 자극이었고, 네덜란드 상선의 인기는 치솟았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주주에 충성하지 않는 회사는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 회사 주식을 매수할 투자자가 있을리 만무하다. 이런 회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곳이라면 증권시장 활성화도 어불성설이다.

바렌츠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 때문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에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배경은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이사회가 지배주주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정을 하면서 일반주주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다. 실제 핵심 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해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모기업 일반주주가 피해를 입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일을 막고 일반주주 보호를 강화하자는 것이 상법 개정안의 취지지만, 재계에서는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상법이 개정되면 재계가 우려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주주 이익 침해 우려를 계속 방치하는 것은 문제다. 이런 논란이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 자본시장이 ‘상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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