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대표적인 화가 정우재는 젊은 시절 반려견에 매료됐다.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애완견을 곧바로 화첩에 옮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추계예술대 미대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반려동물과 함께한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도시의 일상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실제 사물의 크기를 비틀어 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들며 메타포까지 응축해 내고 있다.
도시 일상의 ‘쌩얼’(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란 의미에서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에 심취된 정우재의 개인전이 오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르떼게이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통 색감을 더해 명상적 화면을 창조한 그는 캔버스를 사용하고, 유채 등 재료를 활용해 K-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우재, ‘Dear Blue-Embracing Each Other's Light’ 사진=아르떼케이 제공 |
지난해 파주 예술인마을에 있는 이랜드갤러리의 초대전에 이어 1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하루 빛(Ordinary Day)’. 애완견 ‘까망이’를 비롯해 고양이, 관상어 등 반려동물과 소녀가 함께 바라보는 도심의 야생적인 일상을 극사실주의 형태로 잡아낸 근작 20여 점을 걸었다.
작가는 “가치와 목적을 잃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 공간을 빛과 숨, 온정을 불어넣은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인의 일상을 주로 그려온 작가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환상적인 순간을 잡아내 첨단산업사회의 굴절된 인간성에 대한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를 화면에 풀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삶에 대한 경외와 예찬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일상의 본질에 한층 더 충실해지고 싶어서다.
정우재, 'Radiant-Overcoming the Limit' 사진=아르떼 케이 제공 |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유대감과 이로 인해 도시 속에서 고립되어 가는 현대인에게 잊혀지고 있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 의미를 소녀와 반려동물의 시선으로 녹여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일상의 풍경과 빛이라는 요소는 동물과 인간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심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정씨는 반려견 ‘까망이’와 지내며 현실에서 느낀 결핍현상이 동물과 소통하면서 해소되는 것을 스스로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물은 갇혀 자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 됐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 가까운 것도 보고 먼 곳도 보며 감성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위험한 소리와 위험하지 않은 소리를 구분하는 법도 익혀야 하구요. 그런 걸 배우지 못하고 자란 반려동물은 사람으로 따지면 사회화가 되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작가의 작품에서 운명적인 무언가에 휘둘릴 때 느끼는 '파워'가 감지된다. 다소 서정적인 화면에 뭔가 에너지를 분출하는 문학적인 메타포가 흐른다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아마 그걸 찾아내는 건 관람객의 몫일 것이다.
“여러 겹의 물감을 붓으로 한줄한줄 쌓아올리면서 오염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실존적 이미지를 화폭에 재현해낸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관람객들은 순수성을 회복하고, 결핍을 채우는 경험을 하지않을까”라고 말한 작가의 한마디가 귀전을 스쳐간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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