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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4년의 기다림…영등포 쪽방촌 96가구 연내 임시거주시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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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7-17 06:00:23   폰트크기 변경      
폭염 견디는 거주민 만나보니…

약 300가구 평균 6㎡ 면적 거주

영구임대주택 개발사업 지지부진 

임시주거시설 설립 단계부터 ‘삐걱’

보상 포기하고 기다리던 주민 피해

市 “국토부ㆍLHㆍ구청 등과 협의”

9월 초 착공…컨테이너로 일부 이주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주민이 골목을 걷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돈이 없는데 어쩌겠어. 나라 말 무조건 잘 들어야지. 재개발하는 동안 컨테이너 같은 곳으로 옮겨서 살 수 있도록 해 준다는데? 어디든 여기보단 좋을 거야.”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김 씨(86) 어르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낮 최고기온 33도를 웃도는 날씨에 쪽방 주민들은 더위를 피해 작은 그늘로 몰려들었다. 쪽방촌 옆 고가차도 아래에는 주민들 수십 명이 돗자리를 깔고 길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쪽방 골목에는 온도를 낮추기 위해 안개형 냉각(쿨링 포그)기가 작동되고 있었지만, 찜통 같은 열기가 사라지는 건 아주 잠시 뿐이었다. 건물 벽 사이로 올라온 곰팡이 악취가 풍기는 골목 사이로 5살, 7살짜리 어린아이 두 명도 뛰어놀고 있었다.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등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의 주민들은 공용 에어컨에 의지해 더위를 나고 있었다. 사진은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에서 공용 에어컨을 가동한 모습.
/ 사진 : 박호수 기자


이곳 영등포 쪽방촌의 쪽방은 대략 540가구다. 워낙 열악한 환경 탓에 갈수록 빈집이 늘어 현재는 약 300가구가 거주 중이다. 한 가구에 평균 6㎡(1.8평)의 건물이 밀집형으로 방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다. 


올해 말 이 중 96가구는 LH가 인근에 마련할 임시주거시설로 생활 터전을 옮겨갈 예정이다. 이날 쪽방촌 폭염 현장점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한 서울시 공무원은 “주민들 모두 이곳을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이 건물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지난 2020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재개발하기로 발표했다. 공공주도로 시행되는 최초의 쪽방촌 정비사업의 신호탄이었다. 특히 쪽방촌 주민을 내쫓지 않고 재정착을 돕는 게 특징이다.


영등포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 사업시행자로 참여해 공공주택개발 지역인 쪽방촌을 3개 블록(M-1블록, S-1블록, A-1블록)으로 나눠 ‘순환개발’하는 방식이다. 블록별로 철거ㆍ공사 등을 진행하고, 인근에 쪽방촌 주민들의 임시주거시설을 만들어 순차적으로 이주시킨다. 이후 재개발이 끝나면 임시주거시설에 있던 주민들이 영구임대주택으로 마련된 새 아파트에 재정착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주민들이 쿨링포그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 / 사진 : 박호수 기자


문제는 이 사업이 기약 없이 미뤄져왔다는 점이다. 국토부의 첫 발표 당시 거주민들이 370호 규모의 영구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예상시기는 2023년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에도 개발 전 단계인 거주민들을 위한 임시주거시설조차 착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시거주시설 건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LH 관계자는 “당초 민간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M-1블록에 있는 모텔이나 여인숙을 리모델링해 임시주거시설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반대한 일부 소유자들의 요청으로 해당 부지를 대토 용지로 전환하게 되어 차질이 생겼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임시주거시설 입주가 늦어질수록 쪽방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왔던 폭염과 폭우, 한파는 이곳 주민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쪽방촌 골목에 앉아 있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박모(82) 할아버지는 “가난도 더위도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벗어날 수 없는 신세가 한탄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집다운 깨끗한 집에 살아보고 싶어 보상금도 포기했는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어. 내가 나이가 많잖아. 죽기 전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하루는 살아볼 수 있겠지?”라고 반문했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가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그늘을 찾아 앉아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사진 : 박호수 기자 


현재 임시거주시설 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만큼 앞으로 거주민들의 보상과 이주 절차 모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게 관계 부처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부, LH, SH, 영등포구와 현재 자주 모여 협의를 진행중”이라며 “하루 빨리 거주민들의 주거권이 나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LH 측은 쪽방촌 인근 고가차도 밑 1007㎡ 부지에 2층짜리 해상용 컨테이너 형식의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하기로 협의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96가구에 공동 샤워실, 공동 주방, 공동 세탁실, 휴게실도 마련된다. 현재 설계가 마무리 단계여서 이르면 8월 말에서 9월 초에 공사를 시작해 올해까지는 이주를 끝낼 계획이다. LH 관계자는 “한 세대 면적이 평균 12㎡(3.6평)로 쪽방 주민들의 현재 거주시설보다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거주시설이고, 쪽방촌 철거와 임대주택 건설은 이후 구역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정확한 입주 예정 시기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준공 기한을 고려하면 적어도 3∼4년은 걸릴 전망이다. 돌아오는 길에 “하루는 살아볼 수 있겠지?”라는 박씨 할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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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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