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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부르며 학전서 작별 인사…‘뒷것’ 김민기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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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7-24 21:00:42   폰트크기 변경      
설경구·장현성 등 동료들 배웅…빗줄기ㆍ눈물 속 이별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의 발인식이 엄수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 앞에서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이 슬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경제=강성규 기자] 저항의 가수이자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30여 년간 이끈 연출가 김민기가 영면에 들었다.

24일 오전 8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친 뒤 고인은 인근 대학로 옛 ‘학전’(아르코꿈밭극장)을 마지막으로 들렀다.

김민기가 33년 동안 ‘뒷것’을 자처하며 후배 문화예술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이 됐던 공간이다.

고인의 유해를 모신 운구차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졌다. 영정을 안고 소극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유족이 다시 운구차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가 고인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추모객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도 목이 터질 것처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힘겹게 1절을 마친 추모객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평소 고인을 ‘은인’이라 일컬은 배우 설경구와 황정민, 장현성 등을 비롯해 배우 최덕문, 배성우, 가수 박학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 동료와 친구 수십 명이 일찌감치 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인으로부터 학전 건물을 이어받아 아르코꿈밭극장 운영을 맡은 정병국 예술위원회 위원장과 일반 시민들도 자리를 지켰다.

극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은 건물 지하로 들어가 고인이 생전 관객과 같이 울고 웃었던 소극장을 훑었다.

추모객들은 비를 맞으며 운구차가 대학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때 색소포니스트 이인권씨가 길 한복판에서 김민기의 곡 ‘아름다운 사람’ 연주를 시작했다.

대학로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연주 소리에 마음을 잠시 가라앉혔던 추모객들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고인의 대표 연출작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섰던 그는 “선생님(김민기)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주가 끝나고도 추모객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하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장현성은 힘겹게 말을 이으며 “가족장으로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자”고 했다. 그제야 추모객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훔쳤다.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고인은 최근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해 지난 21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유해를 봉안된다.

1971년 가수로 데뷔한 고인은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대표곡으로 남겼으며 1991년 학전을 개관하고 다양한 공연예술 작품을 연출했다.

‘배울 학(學), 밭 전(田)’이란 뜻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우는 못자리 역할에 충실했다. 가난한 예술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출연료와 수익금을 투명하게 챙겨준 일화도 유명하다.

학전은 재정 악화와 고인의 건강 문제로 지난 3월 문을 닫았다가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인 지난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강성규 기자 g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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