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정석한 기자] 고등학생 시절인 1996년 부산극장에서 영화 ‘트위스터(Twister)’를 봤다. 기상학자인 주인공이 회오리바람을 쫓아다니는 일종의 재난 블럭버스터였는데, 이 영화가 주는 시각ㆍ청각적 쾌감이 아주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30년이 지난 올해 이 영화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트위스터스(Twisters)’가 개봉해 관람했다. 제목부터 복수형인 만큼, 좀더 다양한 회오리바람이 나오고 극중 인물들이 좀더 고생을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만큼, 기술적 완성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극장에서 본 이 영화는 내가 트위스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오클라호마주는 트위스터 등 폭풍이 잦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전 세계 폭풍의 70% 이상이 오클라호마주에서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기상학자인 주인공이 트위스터를 쫒아다니는 이유도 트위스터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들의 데이터를 취합해 기상예보에 반영시켜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기자 입장에서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지하공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다. 산이 없고 평지로만 이뤄진 오클라호마주는 그야말로 트위스터가 발생하기 딱 좋은 지형이다. 그러나 트위스터를 피할 수 있는 지하공간이나 벙커가 마땅치 않아 극중 인물들이 고생을 한다.
영화 중반 몰아닥친 트위스터에 극중 인물들은 수영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붙잡으면서 상황을 모면하고, 말미에는 큰 극장을 급습한 트위스터에 극장 좌석 아래 부분을 겨우 붙잡고 상황을 넘긴다. 극중 인물의 대사도 있다. “여기엔 지하공간이 없어요!”
그토록 폭풍이 잦은 주에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공간이 없는지는 기자 입장에서 제대로 모를 일이다. 실제로는 있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폭풍 등 자연재해가 빈번한 곳에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반시설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화는 방증한다.
우리나라도 폭풍은 아니지만 자연재해의 영향권에 있다. 올 들어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폭염도 자연재해의 일종이다. 이달 15일 기준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집계된 누적 온열질환자는 2500명이 넘었다.
폭염을 이길 수 있는 기반시설은 무엇이 있을까. 야외작업이 다수인 건설현장을 예로 들면, 온열질환 예방 3대 기본수칙(물ㆍ그늘ㆍ휴식)을 기반으로 차단막 설치, 휴게시설 운영 등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를 보면 차열ㆍ단열성능을 높인 고능성 창호 설치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폭염뿐만 아니라, 혹한, 지진, 폭우, 황사 등 우리 삶을 급습하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게 기반시설이다. 이는 그만큼 충분한 SOC 예산을 배정ㆍ투입해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선제적으로 맞서지 못한다면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석한 기자 jobize@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