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가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뜨겁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찬성과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노란봉투법 취지만 생각하면,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이 노란봉투법의 위헌성이 문제되는 것은 입법취지가 아니라 개별적 내용에 있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한 경우라도 그 목적에 맞지 않는 수단,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수단까지 정당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에서 위헌성이 문제되는 부분은 대표적으로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근로자 및 사용자 개념의 확장, 둘째, 쟁의행위의 대상 확대, 셋째,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제한, 넷째, 근로자의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채무의 배제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쟁의행위 대상 확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경우 가장 논란 뜨거울 수 있는 것이 쟁의행위 대상 확대이다. 현행 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쟁의를 노사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여기서 ‘근로조건의 결정’을 ‘근로조건’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비록 작은 차이지만, 법률문서에서 쉼표 하나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엄청난 의미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이 작은 문구 차이의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헌법상의 근로삼권이 일방적으로 근로자를 편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헌법은 노사관계를 약육강식의 관계로 보는 것도, 선악의 관계로 보는 것도 아니다. 헌법상의 근로삼권은 단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나타나는 힘의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노동조합 결성 및 활동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는 근로자를 무조건 편드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와 사용자의 대등성이 공정한 노사관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로삼권을 이용하여 노사관계가 근로자 우위로 역전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사업자의 횡포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횡포도 문제될 수 있으며, 양자를 모두 규제함으로써 공정하고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헌법상 근로삼권의 취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쟁의행위의 대상도 사업자의 결정권이 인정되는 범위로 한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법상 ‘근로조건의 결정’이라는 말은 결국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것에 한정하여 노동쟁의 및 쟁의행위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에 노란봉투법에 따라 ‘근로조건’을 대상으로 노동쟁의 및 쟁의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용자가 아닌 정부나 시민단체 등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 이들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정치적 파업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파업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노란봉투법의 쟁의행위 대상 확대 문제는 종래 노동법학계에서 젱의행위의 대상을 이익분쟁에서 권리분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있으며, 과거 노동조합법이 1997년 개정되면서 ‘근로조건’을 ‘근로조건 결정’으로 변경한 것을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 이외에 이미 결정된 근로조건의 준수, 부당해고에 대한 항의 등을 이유로 한 파업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근로조건에 관한 파업이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위험성과 더불어 단체협약의 준수를 요구하는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한 판례를 참고할 때 굳이 법개정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노란봉투법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의 균형을 깨뜨리는 개정안 내용들은 결국 위헌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이 정당성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의 좋은 의도가 그 내용에서 확인되는 위헌성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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