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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건설품질관리] “단가 50% 내려도 탈락”… CSI, 깜깜이 입찰에 ‘치킨게임’ 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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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8-22 06:00:43   폰트크기 변경      
제도 시행 한 달

품질시험ㆍ검사 때 활용 의무화

연간계약ㆍ품질검사 의뢰 2가지

건설사가 공고 후 업체 선정 방식


낙찰결과 ‘완전 미공개’ 시스템

과정 알 수 없어 저가 출혈경쟁

브로커 차단 취지, 오히려 활개

부실검사 우려 커 ‘안전 경고등’

국토안전관리원 “지속적 개선”


CSI 메인화면. 


[대한경제=서용원 기자]#1. 경기 지역 한 토목현장에서 철근 인장 품질검사 입찰이 공고됐다. A품검기관 관계자는 1조(철근 3개)당 21만원을 적어냈는데, 경쟁 기관의 투찰가격을 파악한 뒤 아연실색했다. B기관은 6만원, C기관은 4만3000원을 쓴 것이다. A기관 관계자는 “CSI 시스템 시행 이후 거의 낙찰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가격이 떨어질지 몰랐다. 우리보다 80%난 싼 가격으로 정말 검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2. 수도권 소재 D품검기관은 해당 지역 내 품질검사를 대부분 수행했는데, 최근 한 달여 동안은 공을 친 날이 허다하다. D기관 관계자는 “건설현장을 돌아다녀 보니 지방업체가 품검업무를 수행하고 있더라. 교통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가격 경쟁이 가능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CSI 시스템으로 인해 최저가 경쟁이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러다간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건설공사의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고 예상되는 하자를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 Construction Safety Management Integrated Information)’이 본래 취지와 달리 품검기관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더불어 건설안전에도 경고등이 커졌다.

21일 품검업계는 CSI 시스템 시행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최저가 경쟁만 부추겨 품검 생태계는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라며, 하루빨리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에 따라 지난 7월10일부터 CSI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레미콘, 골재, 아스팔트, 철강재 등의 건설자재에 대해 품검을 희망하는 건설사는 반드시 CSI 시스템을 통해 품검기관을 선정해야 한다.

CSI 시스템은 품검기관에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고 품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기존에는 건설사와 품검기관 사이에 품검 영업을 하는 이른바 ‘브로커’가 끼어 있어 문제가 됐다. 품검기관에 건설사를 소개해주는 브로커는 품검비용의 절반을 가져갔고, 이는 품검기관의 경영악화는 물론 허위 시험성적서 발급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CSI 시스템은 오히려 품검기관을 옥죄고 있다. CSI 시스템은 연간단가계약과 일반경쟁입찰로 나뉘는데, 일반경쟁입찰의 경우 무한 최저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어서다. 인건비도 나오지 않은 검사비용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

E품검기관 관계자는 “적정가격 대비 50%로 내려 써도 낙찰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마지노선이라 생각한 가격도 떨어진다”면서, “품검에는 표준대가가 없긴 하지만, 과연 이 가격으로 품검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존에는 지역 품검기관 몇 개가 경쟁하는데 반해 CSI 시스템은 전국적으로 경쟁하는 것도 최저가를 부추기는 요소”라고 말했다.

더구나 공개입찰은 ‘깜깜이’ 형태로 진행된다. 입찰이 종료되면 공고 게시물은 바로 사라진다. 품검기관 입장에서는 어떻게 떨어졌는지, 누가 얼마에 가져갔는지 알 길이 없다.

F품검기관 대표는 “최종 낙찰자와 가격만 공개하더라도 억울하지는 않겠다. 추후 입찰에서는 선별해 들어가거나, 다른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자기 가격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기관이 쏜 가격은 물론 최종 낙찰 가격도 모르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러한 무한 최저가 경쟁은 건설사 입장에서도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저가 경쟁은 신뢰도가 높은 품검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품검은 결국 건설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브로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브로커들은 일반경쟁입찰에서 품검기관 입찰을 대신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또, 연간단가계약에서는 브로커의 활동 범위가 더욱 늘어났다는 게 품검업계의 주장이다. 그동안 협력사 등록을 통해 연간단가계약을 해온 대형건설사들은 변동이 없지만, CSI 시스템을 통해 연간단가계약을 새로 도입하는 중견업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품검업계 관계자는 “CSI 시스템으로 적정 대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깜깜이 입찰과 무한경쟁 속에서 품검기관들은 궁지로 몰리고 있다”면서, “신뢰도 높은 기관들이 무너질 경우 건설공사의 품검 업무 생태계가 붕괴되어, 건설안전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용원 기자 a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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