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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농익은 '윤병락 표' 사과예술...행복과 결실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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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8-22 14:38:47   폰트크기 변경      
윤병락, 9월 4일 코엑서서 개막하는 아트페어'키아프 서울'에 노화랑 대표작가 개인전..신작 20여점 출품

빨갛게 농익은 사과들이 마치 군무(群舞)를 하듯 서로의 동작과 맵시를 뽐낸다. 사과가 행복이 되고, 행복이 사과가 되는 경지를 꿰뚫은 예술가의 강건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붉은색 광채를 뿜어내는 화면은 사과 상자의 바닥에 깔린 신문지와 어우러져 함부로 법접할 수 없는 숭고미를 만든다. 50대 서양화가 윤병락의 2024년 작 ‘가을향기’이다.

윤병락의 2024년 작 '가을 향기'                                                                          산진=노화랑 제공


30년간 사과에 열광하면서 그 영혼을 화폭에 담아낸 윤씨의 회화 세계를 재조명할 기회가 찾아왔다.  다음달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해  8일까지 이어지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노화랑의 대표작가로  참가해 개인전을 연다.  부모님의 농사일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사과를 모티브로 작업한 근작 ‘가을향기’ 시리즈 20여점이 나와 작가의 예술적 위상을 음미해 볼 수 있다.

윤씨의 예술적 궤적은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한 몸이다. 196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대 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에 당선될 정도로 묘사력이 뛰어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초현실주의 화풍의 ‘인체’ 시리즈를 시작한 그는 고구려 기상과 한국 여인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거쳐 2003년 이후 전통 한지에 서양 물감을 쓴 ‘퓨전 한국화’ 사과 그림으로 진화해 왔다. 한국 여인의 혼이 담긴 반닫이 그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걸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중·고교 미술과 국어 교과서 등 8곳에 실려 있다.


윤씨가 중앙화단에 진출한 건 2006년. 노화랑의 노승진 회장의 권유로 서울에서 처음 사과그림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현대인들의 모방 본능을 사과에 투영한 독창성 때문에 무섭게 팔려 나갔다. 단번에 2007년 ‘화단의 영스타’로 떠올랐다. 전시회 때마다 컬렉터들이 몰려 작품의 90% 이상이 팔리는 몇 안 되는 ‘행복한 작가’가 됐다. 최근 10년간 국내외 경매에서도 출품작 30여점이 모두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작업실을 일산에서 파주 출판단지로 옮긴 그는 요즘도 작품 주문이 밀려들어 연말까지 예약이 끝난 상태다.

윤병락 씨가 노화랑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앞에서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경갑 기자


윤씨의 사과 그림은 다른 화가의 작품과 섞어 놔도 딱 ‘병락이 것’이라고 짚어낼 수 있을 만큼 체취가 독특하다. 작가의 말마따나 “사과는 내 주변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공감을 주는 진실”일 만큼 섬뜩할 정도의 개성을 풍긴다. 오래 묵혀 발효하고 뭉그러진 색과 형태로 자신의 사과에 대한 열망을 뒤섞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의 사과를 그렸다. 사과를 통해 한국판 극사실주의 정신의 매듭을 잇고, 거기서 얻어진 화면은 희망찬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사과를 그린다기보다 인간의 행복과 자연의 결실이 분리되지 않는 순리를 사과를 통해 불러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윤씨는 정교한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하이퍼리얼리즘(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린 그림)의 50대 대표작가로 꼽힌다. 그의 사과 그림에는 인간의 풍요와 욕망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잔잔한 빛과 색감이 화면 깊숙이 끼어들고 정적과 평안, 고요를 마음껏 발산한다. ‘사과보다 더 사과’ 같아 사진처럼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사실’이라는 믿음마저 흔들어 놓는다.

그림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에는 그림 철학이 확고하지 않았지만 50대 중반에 선 지금은 어느 정도 미학적인 개념이 잡히는 것 같다고 그는 자평했다.

극사실적 기법과 사과 상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사과를 훨씬 입체적으로 그려낸 ‘윤병락 표’ 그림이 이처럼 인기를 끄는 까닭은 뭘까. 가장 큰 요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결실과 행복’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는 것이다. 결실의 계절에 느끼는 포만과 행복 등 풍부한 감성의 나래를 상상의 밑뿌리로 어루만진다. 작품 제목이 ‘가을 향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도 한 요소다. 그는 “고향 경북 영천에서 자란 기억과 농사의 소중함에서 예술의 원천을 뽑아낸다”고 했다. “벼농사를 하는 부모님의 소중한 땀방울을 보며 자랐어요. 곡식은 땅이라는 캔버스에서 쉬지 않고 노동해야 잘 영글듯이 예술 역시 ‘영혼의 지문 같은 손맛’으로 쉼 없이 노력해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것 같아요.”

이처럼 10대나 20대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시각예술로 전해주고 중·장년층에는 유년시절의 땀방울을 되새기게 한 것이 주효했다. “제 작업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감성을 접목하고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것이지요. 제 작품에는 노랫말처럼 내레이션이 담겨 있습니다.”

기법의 특이함도 미술 애호가들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이유다. 나무판 위에 삼합지 이상의 두꺼운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유화 물감으로 두세 차례 덧칠을 한다. 작업실에서 사과를 깎기도 하고 궤짝을 옆으로 쏟기도 하면서 다양한 변형구도를 만들어낸다.

극사실주이 화풍인데다 수작업으로 변형 캔버스를 제작해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품이 든다. 1.6m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꼬박 보름이 걸린다.  또 그림의 공간을 캔버스 안에 가두는 게 아니고 확장시켜 전시장 벽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해서 촉각·후각·미각을  모두 잡아낸다.  그가 변형 캔버스를 계속하고 또 탐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회화의 평면성을 넘어 설치 공간의 영역으로 무한히 넓혀 나가고 있는 셈이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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