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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후쿠시마 문제 바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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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8-27 15:45:09   폰트크기 변경      

어르신과 젊은이가 어떤 문제로 논쟁이 벌어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르신이 논쟁에서 밀리면 문제를 슬쩍 바꾼다. ‘싸가지 논쟁’이 대표적이다. 원래 논쟁의 주제가 도덕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경우 원래의 문제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맞아! 젊은 녀석이 싸가지가 없더라구!”하는 식으로 원래 문제를 잊어버리고 모두 바뀐 문제를 풀게 되는 경우도 있다.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는 애초부터 사회적 쟁점이 될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시점에서 대규모 방사성 오염수 방류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1996년부터 우리나라 주변 바다 40군데에서 해수를 채취하여 방사능 검사를 해오고 있고 130군데가 넘는 환경방사능 측정소에서 방사선을 측정해서 홈페이지와 무료 핸드폰 앱으로도 제공한다.

그런데 방사성 오염수를 걸러서 방사성 물질은 모두 배출기준 이하로 만들고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의 농도는 배출제한치인 리터당 6만 베크렐의 1/40 수준인 1500 베크렐로 방류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게 없다. 게다가 후쿠시마는 일본의 동쪽에 태평양을 면해 있으므로 방류가 된다고 하더라도 방류수는 직접 우리 해역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미국을 거쳐 태평양을 돌아서 우리나라에 도달한다. 하루에 방류되는 처리수인 500톤은 올림픽 규모 수영경기장의 절반 정도다. 바다구경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정부가 자국민 보호도 하지 않을 수준으로 방류를 허가했다고 믿기도 어렵고 또 그것이 돌아돌아 우리나라에 올 때엔 걱정스런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사회적 이슈가 된 후 1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아무런 영향도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에 문제가 없는 것을 검사를 한다고 1조5000억원이나 썼다. 1억5000만원씩 1만명에게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여전히 “방류수가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4, 5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 모른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2011년에 방류한 것은 이미 영향이 나타났어야 하지 않은가? 또 “삼중수소가 생물체에 축적된다”고 하는데 유기결합삼중수소(OBT)는 2% 정도이므로 사실상 축적을 말할 수 없다. “생물학적 영향을 조사하지 않고 방류를 한다”고 하는데 원래 배출기준을 정할 때 조사를 하는 것이고 배출할 때는 기준치 이하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슬슬 문제를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도덕문제로 바꾸기는 어렵고 가장 손쉬운 ‘반일문제’로 바꾸고 있다. 문제 바꿔치기에 속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후쿠시마 처리수의 방류로 인해 방사선 영향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것인가’이다.

일본의 의도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일본이 믿을 만한 나라인지, 일본 정부의 입장을 우리정부가 지지한다든지 하는 식의 반일정서로 문제를 바꿔치기 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런 식이라면 일본 여행도 가지 말아야 하고 일본제품도 쓰지 말아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한다는 것은 사사건건 다 반대하라는 말인가?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의견을 묻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정치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자명한 과학문제에 대해서 다수결 문제로 바꾸는 것도 옳지 않다. 과학이 다수결로 될 문제인가?

패자가 더이상 해볼 데가 없다면 이번엔 절차상의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승자가 절차상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경우는 없다. “일본이 알려주지 않았다”하는 식이다.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뭘 따로 알려달라는 것인가? 이 역시 문제를 바꾸는 것이다.

답안지에 쓸 것이 없는 학생이 정답과는 관련 없는 것을 잔뜩 써놓고 조금이라도 점수를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나, 답변이 궁색한 발표자가 질문을 트집잡는 것도 문제 바꾸기의 고전적 사례이다.

문제를 바꿔서 푸는 이유는 간단하다. 못 풀겠으니까 바꾸는 것이다. 또 쉽게 풀려고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슬슬 바꿔나가는데 정작 채점을 해야 할 사람이 문제가 바뀐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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