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한수원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세계 최초로 가압수형 경수로를 상업화한 기술을 토대로 체코 정부에 진정을 제기한 것이다. 내년 3월 체코 정부와 최종 계약을 앞두고 조건을 협상 중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사태가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체코전력공사(CEZ)가 한수원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항의하며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진정을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AP1000 원자로를 갖고 한수원,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했지만 탈락했다. 한수원은 한국형 신형경수로 APR1400을 개량한 APR1000을 제시해 지난달 체코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APR1000과 APR1400 원자로 설계가 자사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사의 기술을 수출하는 데 미국 정부의 승인을 구할 법적권리가 있고, 자신들의 허락 없이 원전 기술을 제삼자에게 수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웨스팅하우스는 “AP1000 원자로 대신 APR1000 원자로를 도입하면 미국 기술을 불법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체코와 미국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천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한국이 가져가게 된다”며, “그 일자리에는 웨스팅하우스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일자리 1만5000개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은 현재 캐나다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다. 2005년 경영 악화로 일본 도시바에 인수된 이후 파산 신청을 거쳐 2018년 캐나다 사모펀드에 인수됐다. 2022년엔 캐나다 우라늄 기업이 지분 49%를 인수했다. 다만, 본사가 미 펜실베이니아에 있고, 고용인원도 많아 지역 내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하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최대 격전지다.
한수원은 APR1000과 ARP1400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독자 기술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원천기술 특허권에 대한 법적인 해석의 차이가 있고, 한ㆍ미 관계를 고려해 원전 수출 시 미국 정부에 신고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내년 체코 정부와의 최종 계약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함께 대응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사실 웨스팅하우스의 특허권 주장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에도 웨스팅하우스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제기했고, 2022년에는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건 바 있다. 이에 대해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지난해 9월 원전 수출 통제권은 미국 정부에 있다는 이유로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을 각하했지만, 즉각 항소하면서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원자력 업계에서는 바라카 수출 사례처럼 웨스팅하우스를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원전을 수출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크고, 이를 신고하기 위해선 웨스팅하우스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 우리나라는 웨스팅하우스 측에 원전계측제어설비 등 납품권을 양해하면서 합의를 이룬 바 있다.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는 이미 원전 시공 능력을 상실했고,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 신규 수익원이 없기 때문에 체코 원전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라고 언급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