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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뒷태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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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8-29 10:53:47   폰트크기 변경      
K-극사실주의 대표작가 정명조, 아트사이드서 개인전...근작 20여점 소개


미술은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추상·설치·영상미술은 ‘대상의 재현’이라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현대미술에 익숙한 시선에서 보면 실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그림은 오히려 참신하게 느껴진다.

정명조의 '아름다움의 역설.                          서진=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극사실주의는 1960~70년대 극단적 추상화였던 모노크롬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됐고,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입됐다. 작가들이 엄청난 공력이 드는 노동집약적 미술에 뛰어드는 것은 얼마든지 변용과 창조가 가능하고, 대상 그 너머의 이미지를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계에 ‘손맛의 내공’을 보여주는 극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극사실주의 화풍의 미학적 특징을 탐색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정명조 씨(54)의 개인전이 29일 막을 올렸다.
 '놀이터(Play-Ground)'를 주제로   검은 단색이나 조선시대  궁중화를  배경으로  여인의 뒷태를 세밀하게  그린 근작 20여점을 풀어놓았다. 난해한 현대미술이 판치는 화단에서 모처럼 극사실주의 작가의 예술적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정씨는 “하이퍼리얼리즘 경향의 작품은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달라 신비한 느낌을 준다”면서 “인터넷시대  ‘이미지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현대인에게 감성을 자극하고 독특한 리얼리티를 안겨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를 졸업한 정씨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홍수에 맞서듯 30여년 동안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를 고집했다. 오버랩핑과 세필 등 다양한 기법으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게 화업의 최종 목표다. 젊은 시절부터 전통적인  ‘한국의 미(美)’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한복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당겼다. 앞모습이 여인의 표피적이고 물질적 특성을 보여주는 데 비해 뒷모습은 내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한국의 미’을 시각화한 셈이다.  연인의 뒷태는 물론 한복 주름과 화려한 문양, 소품, 장신구 등까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정교하게 되살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정씨는 평생 ‘가슴으로 여인의 뒷태를 바라보는 화가’의 삶을 견지했다. 한국 여인의 영혼과 흔적을 찾아 ‘화가’로만 남았을 뿐 그 어떤 장식의 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작품 속 여인들을 통해 작가는 '아름다움의 역설'을 조명해왔다.
정명조의 '아름다움의 역설'                        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섬세하게 표현된 의복과 장신구는 사진처럼 정교하지만, 작가는 화려한 한복을 입은 인물의 내밀한 표정을 의도적으로 숨긴다. 화면에 여인의 얼굴이나 동작이 결코 드러나지 않아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보고 어떤 이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어떤 이는 아름다움의 유지에 부과된 전율을 느낀다. 첨단산업사회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림이란 영원히 아름다움을 숭화하는 작업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는가를 중시하죠. 그래서  시각예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세상과도 비슷합니다. 실제로 포장된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SNS는 서로 마음이 확인되지 않는 놀이터(playground)같은 곳이죠”

밝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의 역설’을 찾아내는 자세로 그림을 그 렸다”고 말한 정명조. 여인의 아름다움을 통해 순수하고 초월적인 정신을 열어 젖힌 그는 한국 극사실주의의 희귀한 정신을 개척하고 있다.

이런 정씨의 작품들은 서울 서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시장에서 ' 미감 바이러스'를 한껏 퍼뜨리고 있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은 묵직한 적막과 함께  싱그러운 오감을 보다 깊은 차원으로 밀어넣는다.  존재만으로 강인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여인의 우아한 자태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이동재 아트갤러리 회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아름다움의 존재를 경험하고, 그 의미를 사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8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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