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전세대출 중단ㆍ축소 확산
공급 절벽 속 ‘전세난민’ 양산 우려
[대한경제=이종무 기자] # 이달 말 전세 만기를 앞둔 직장인 김모(32ㆍ서울 영등포구) 씨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주인이 4억3000만원이던 전세 보증금을 갱신 상한선(5%)보다 훨씬 높은 6억20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못 박은 가운데, 주거래은행인 KB국민은행이 오는 3일부터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때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제한하기로 하면서다.
여기에 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도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전세대출 옥죄기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김 씨는 “주거래은행마저 대출 창구가 좁아져 자금 충당이 안 되고 있다”며 “이미 받은 신용대출을 더 받거나 주식 등 자산을 처분해야 할 수 있어 상황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1일 은행권 ‘대출 절벽’ 여파로 전세 실수요자가 혼란에 휩싸였다. 금융당국 압박으로 주요 시중 은행이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제한하는 식으로 총량 조절을 본격화하면서다. 대출 수요가 다른 시중은행으로 몰리면 해당 은행도 대출 문턱을 높일 수밖에 없고 금융권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실수요자가 되레 부담이 늘고 피해를 보는 형국이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 씨는 “신혼 부부에 아내가 임신 중인데 편안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고 인터넷 댓글과 커뮤니티 등에선 “사회 초년생은 매달 막대한 월셋값을 내고 살아가라는 뜻”이라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1일 서울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다. /사진:연합 |
이들 시중은행이 전세대출 문턱을 높이는 데는 이를 줄이지 않고선 가계대출 관리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다. 지난달 29일 기준 5대 시중 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24조617억원으로. 지난 7월 말보다 8조3234억원 늘었다. 2021년 4월(9조2266억원) 이래 3년 4개월 만에 최대치다. 특히 전세대출은 118조7179억원으로 같은 기간 938억원 증가해 지난 5월부터 4개월 연속 오름세다.
전세대출이 확대하는 것은 전셋값이 그만큼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전셋값이 1년 넘게(66주째) 지칠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셋째 주(지난달 19일) 기준 전셋값 상승률(0.2%)도 한 주 전(0.19%)보다 커졌다.
전셋값이 오르는 것 역시 공급이 사실상 ‘절벽’에 가까운 수준이서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달 28일 현재 2만6993건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올해 초 3만5000건 규모를 유지해온 것을 감안하면 3분의 1 가까이 빠진 셈이다. 지난해 초 고점(5만5882건)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이미 빌라 기피 현상이 팽배한 데다 가을 이사철 수요가 맞물리면서 아파트 전세 수급 불균형은 심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더해 지난달부터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ㆍ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나며, 일부 집주인이 그간 올리지 못한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면서 전세 시장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급증하는 가계 빚으로 금융 불안정을 막기 위한 전세대출 규제가 만성적인 공급 부족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세 수요자 등 무주택 서민에게 월세 등으로 등 떠밀어 주거비 부담을 가중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전세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이날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등에 따른 풍선효과로 수요 확대가 불가피한데, 전세대출 취급 제한과 이로 인한 전셋값 상승이 계속될 수 있어 실수요자에게 혼란을 더욱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새롬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대출 규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런 조치가 은행권 전반에 확산할 경우 수도권 아파트 전세 수요는 전세대출이 가능한 매물을 찾기 어려워 반전세나 월세 시장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은 가뜩이나 아파트 전세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세 공급 위축을 심화시켜 다가오는 이사철 전셋값 상승을 가중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무 기자 j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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