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겸 추상화가 김휘연은 비교적 밝은 색깔인 즐겨 사용한다.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김성호)와 어머니(박미숙)의 화실을 드나들면서 느꼈던 현란한 색채들의 기억 좋아서다. 캔버스와 도예의 리듬을 잡아주는 장치로도 원색의 은은한 물감을 자주 활용한다. 예를들어 캔버스 바탕을 엷은 색으로 버무린 뒤 여기에 빨강, 노랑 등의 색채로 전체 구도와 균형을 모색한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에서 받은 깊은 영감을 덧씌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그래서 작가의 붓질은 아슬아슬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거의 광폭한 에너지로 복잡하게 얽히기도 한다.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마음을 붓끝으로 잡아낸 그의 작품들은 마치 과감한 행위의 궤적을 담은 액션 페인팅처럼 읽힌다.
4일 서울 논현동 AVO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김휘연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AVO갤러리 제공 |
한국식 표현주의 양식에 북미 추상을 접목한 김휘연이 지난 3년간 몸부림치며 달려온 작업세계를 한꺼번에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지난 3일 서울 논현동 AVO갤러리에서 막을 올려 오는 21일까지 이어지는 그의 개인전을 통해서다. ‘핑거프린트-불완전한 존재를 위하여’란 타이들을 건 이번 전시에는 한국판 추상표현주의 작품과 울퉁불퉁한 도예작품 30여점을 펼쳐놓았다. 현대미술의 최근 트렌드를 탐구하는 김씨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불안전한 감성과 행동, 의식을 시각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김씨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첨단산업사회 현대인이 경험한 불안전한 순간들을 2차, 3차원의 형태로 재현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이화여대에서 조형미술(도예)을 전공한 김씨는 서울 콜로라도프로젝트와 아시아 현대 도예전 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공예트렌드페어, 대구국제아트페어, ‘영아티스트 콘테스트’ 수상전에 잇달아 작품을 출품하며 국내외 화단에 입지를 다졌다.
김휘연의 '겹겹이 쌓인 흔적' 사진= AVO갤러리 제공 |
도예가로 미술계 첫발을 내 디딘 그는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서 변화와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는 흙과 불이 만들어낸 도예의 우연성에 주목하며 현대적 미감의 도자기를 만들어낸다. 회색빛 색감을 바탕으로 은은한 색감을 입혀 울퉁불퉁하면서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면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의 회화 작품들은 소소한 일상의 산물이다. 마치 행복한 삶의 표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듯 빨강색, 흰색, 분홍 등 밝은 색조로 가득하다. 그는 ”캔버스에 붓으로 칠하고, 찍고, 긁어내는 몸짓은 마음 속에 응집된 찰라의 순간을 차지게 잡아낸 감성”이라고 설명했다.
김휘연의 도예작품 사진= AVO갤러리 제공 |
“젊은 시절 도예가 안겨준 신비감을 새로운 회화방식으로 승화했다”는 그는 현란한 북미식 액션페인팅을 더해 복잡하게 얽힌 현대인들의 의식을 실타래처럼 풀어냈다.
실제로 존재의 불완전함을 균형과 비율로 은유하는 그의 '항아리'는 인간의 문화적 상징과 재현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엮어냈다.
모든 생명은 겉보기에 완전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결함이 내재되어 있는 불완전한 존재한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현대인들이 불완전함을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게 그의 설명이다.
그림에서도 그의 이런 생각은 여실히 드러난다.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전성을 색채의 변주로 확장했다. 손가락을 사용해 인간의 가벼움과 심오함, 유머와 진지함 사이를 넘나든다. 그는 요즘도 작품의 자양분을 채집하려 인문학적 탐색에 여념이 없다. 문학, 영화, 사진, 음악, 미술사, 정치, 철학 분야에서 소재를 마치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미술평론가 김윤섭 씨는 "김휘연은 어떤 형식이나 장르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회화와 도예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조형 어법을 구사한다"면서 "특유의 젊은 감성으로 현대회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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