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째 임시역사를 쓰고 있는 천안역사 전경. 2018년 11월 국가철도공단과 위수탁 협약체결 후 증개축을 추진했으나 공사비 부족으로 유찰을 거듭하고 있다. / 사진: 연합 |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올 들어 국가철도공단이 발주한 노후 역사 증축공사가 연이어 유찰돼 지역과 건설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도심지 한복판에 위치한 역사를 리모델링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동선 확보 계획도 고려하지 않고 발주만 강행해 건설사들은 당분간 역사 증축공사는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자체로부터 발주만 위탁받은 공단 역시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철도공단이 지난 6일 개찰하려던 종합심사낙찰제 방식의 ‘경부선 천안역사 증축공사(추정가격 635억원)’는 개찰일을 10월1일로 돌연 연기했다. 지난 7월 최초 공고가 유찰된 이후 부랴부랴 낸 재공고에서도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를 제출한 업체가 한 군데도 없어 개찰일만 연기한 변경공고를 낸 셈이다.
21년째 임시 역사인 천안역사의 증ㆍ개축은 천안시의 숙원사업으로 꼽히지만, 이 사업은 건설사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고 있다. 건설사 자체 견적에서 현장 원가 실행률이 약 20%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철도 역사 건설은 신축보다 증축이 훨씬 어렵다”며 “기존 역사 이용을 건드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작업시간은 새벽 1시∼4시 사이로 제한되고, 철도 교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작업 공간도 협소한데 이런 부분이 공사비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B사 관계자도 “작업 야간할증률은 물론 역사 이용객의 동선 확보를 위한 가설 통로시설 공사비도 반영이 안 됐다”며 “관련 실적을 보유한 건설사 모두 당분간 역사 증축공사에는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철도 역사 건설은 단순 건축공사가 아닌 통신ㆍ전기ㆍ기계 등 각종 제어장치를 총괄적으로 살펴야 하는 고난도 공사로 꼽힌다. 심지어 증축은 기존 역사의 기능은 보존하는 가운데 공사를 진행해야 해 신축보다 난이도가 한층 올라간다.
문제는 이런 어려운 점이 공사비에는 반영이 안된 채 발주가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최초 공고한 ‘호남고속철도 광주송정역 증축공사(추정가격 304억원)’는 지난 7월 3차 공고까지 유찰된 뒤 두 달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초된 상태다.
이 공사는 앞서 2차 공고에 참여한 건설사 2곳이 예정가격의 108∼118%를 투찰하며 공사비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지만, 이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채 3차 공고가 이뤄져 결국 무효 공고 처리됐다.
지역 숙원인 역사 증축공사가 연이어 유찰돼 철도공단도 난감한 기색이다.
역사 신축은 철도공단의 사업이지만, 역사 증축은 해당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사업이다. 지자체가 사업비 등 모든 사안을 결정해 공단에 발주만 위탁해 공단 자체적으로 공사비 증ㆍ감액 또는 물량 조정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증축 실적을 보유한 C사 임원은 “역사 건설 경험이 있는 공단이 천안시와 광주시가 사업비 재심의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역사 공사의 특수성을 전문성이 부족한 지자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공단이 적극적으로 컨설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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