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료개혁은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구축, 보상체계 공공성 제고 등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아젠다를 보고 방향에 수긍하는 쪽이 많았던 것 같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공공 의대를 추진하다가 의료계의 반발로 멈춘 것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은 윤 정부의 추진력이 꽤 괜찮다는 초반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과 강의실을 박차고 나온 의대생에게도 그리 우호적이진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 의료개혁안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바뀌고 있다. 정부는 매년 2000명씩 5년간 의대생 1만 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수군거림이 나타나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확정하는 회의 자료가 없다는 것도 알려졌다. 의대 교수들 반발에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1509명으로 미봉한 것도, 후속 조치가 의대 교수들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는 것도 민심의 추를 바꾸고 있다. 개혁은 확 뜯어고치는 것인데, 명분과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치밀해야 한다. 어느 하나도 빠지면 동력이 떨어져 원점회귀다.
최근 회고록을 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위기보다 갈등과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갈등은 상황을 보는 시각과 해결 방안에 대해 엇박자를 내면서 나타나는 소음이다. 이를 해결하는 게 정치력이다. 완장으로 밀어붙이면 탈이 난다. 의료개혁에 대해 민심이 바뀌는 것은 의료소비자인 국민이 의료현장에서 체감하는 이득이 되레 사라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증환자가 상급병원에서 외래로 진료받기 위한 대기 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고, 주말이나 심야시간대 응급실에서 치료받는 게 어려워지면서 “이게 개혁인가”라는 의아심이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취지가 좋으니) 국민이 지지해 달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개혁안이 10년, 20년 앞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배제한 의료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 의료 체계를 만든 1등 공신인 의료진의 사기를 올려주기는커녕 되레 ‘악마화’하고 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와전됐다는 ‘의새’ 논란이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루비콘강을 만들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미래의 최대 예언자는 과거”라고 했다.
통계는 이렇다. 2022년 우리나라 남자 기대수명은 79.9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8.0년보다 1.9년 높고, 여자는 85.6년으로 OECD 평균 83.2년보다 2.4년 높았다. 영아사망률도 평균 2.4명(2021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4.1명)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암 환자 5년 상대 생존율은 72,1%로 10년 새 6.6%포인트 높아졌다. 위암 생존율은 68.9%로 미국의 33.1%, 영국의 20.7%, 일본의 60.3%보다 높았을 정도로 대부분 암 생존율이 선진국을 압도했다.
이런 나라에서 지금 의료개혁을 두고 의정갈등은 펄펄 끓고, 국민은 불안하다. 이게 팩트다. 고복지, 고비용, 저효율로 대변되는 ‘영국병’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뚝심 있게 노동조합을 개혁하면서 개혁성과를 냈다. 잘못된 관행과 이를 방조하거나 묵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깨는 용기를 보였다. 해현경장(解弦更張)과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차이점을 생각해볼 시점이다.
리더십 이론은 갈등관리 스타일을 몇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회피적 스타일(외면), 순응적 스타일(상대방에게 양보), 강압적 스타일(자신 욕구만 충족), 협상적 스타일(양보 주고받는 것), 협력적 스타일(양쪽 모두 최선이라고 동의)이다. 어떤 갈등관리 스타일이 이번 사태 해결에 필요할까. 불굴과 불통 사이에서 헷갈리면, 국리민복(國利民福)만 생각하면 된다. 잘못된 걸 고치지 않으면 허물이 된다
남궁 덕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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