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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꿈꾸는 색채의 변주...12人12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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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9-24 13:17:05   폰트크기 변경      
장은선갤러리 10월2~18일 ‘이상향’전...중견작가 12명의 수작 24점 전시


인간은 유한한 삶에서 늘 무한의 자유를 꿈꾼다.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뭔가 ‘힐링(healing)’이 필요하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술가들 역시 자신만이 겪은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묵직하게, 때론 경쾌하게 서정적인 색채와 문학적인 깊이로 이상향을 연출한다. 실제로 이들에게 그림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샹그릴라(이상향)’ 같은 것이다. 유토피아의 세계를 화면 깊속하게 밀어넣는 노력이야말로 명작 탄생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김선수 씨의 '마음 속 고요-비비추'                                               사진=장은선갤러리 제공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향(理想鄕)을 꿈꾸며 다양한 소재를 아낌없이 쏟아 현대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중견 작가들의 이색전인 전시가 마련된다. 서울 종로구 장은선갤러리에서 다음달 2일 개막해 18일까지 이어지는 ‘이상향’전이다.

홍대 미대를 나와 자신만의 예술적 이상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아티스트 그룹 ‘이상향’ 멤버 12명이 함께 참여했다. 김선수를 비롯해 노순석, 배정은, 송정임, 양대만, 장상철, 전진규, 정수미, 조재익, 조충래, 최욱, 하판덕 등 탄탄한 화력을 갖춘 아티스트들이다.

‘12인의 여정, 이상(理想)을 향해’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한국적인 미감을 서로 다른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 24점이 걸린다. 한국화와 서양화에 뿌리를 두고 뜨거운 예술정신을 펼쳐 보이이며 각기 다른 조형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견 작가의 다양한 미학적 프리즘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작가들은 “내 그림이 누군가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한국적인 색상과 선을 선택해 캔버스라는 접시에 맛있는 색감 요리를 담아낸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이상향을 꿈꿔왔던 이들은 현대 사회의 인간과 자연, 도심 풍경, 동식물을 다양한 소재를 꺼내들어 캔버스에 색다른 스토리를 감칠맛 나게 버무렸다.

김선수 씨는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비비추를 화면에 되살려낸 근작 '마음속의 고요'시리즈를 펼쳐보인다. 햇살이 포근하게 스며드는 자연의 아침에 방긋 웃는 비비추의 몸짓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냈다.  풀과 꽃, 산림과 강기슭 등을 화폭으로 옮겨 생생한 자연향기를 전달하는 그림의 영감 원천은 아마 자연 그대로의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송정임씨의 '저수지로 날아간 공'                                                        사진=장은선갤러리 제공

2006년과 2009년 두차례 영국 BP포트레이트 어워드를 수상한 송정임 씨는 저수지로 날아간 공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작품과 늦가을 나무에서 막 떨어지는 낙엽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을 건다. ‘잎’시리즈 작품은 낙엽이 만들어내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간직된 초록과 새순의 기억들을 갈색톤의 색채로 잡아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춤추고 있는 낙엽이야말로 오히려 유토피아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추상화가 정수미 씨는 ​마치 기도를 하듯, 인고의 시간 속에서 수 천개의 점에 몰입한 작품을 내건다. 거대한 캔버스에 한층 한층 물감이 덮이는 과정을 삶의 여정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정씨는 “사막처럼 광활한 캔버스 표면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터벅터벅 걸어가 듯 모래점을 찍다보면 삶은 기다람의 연속”이라며 “어느 순간 공간에 조용한 파문이 일고 울림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주어진 유한한 삶 속에서 그만의 무늬로 영원의 순간을 새기고 싶다는 얘기로 들린다.
정수미씨의 '영원한 순간'                                                                사진=장은선갤러리 제공

닭 그림으로 잘 알려진 배정은 씨의 작품을 들고 나온다. 닭을 통해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 드러냄과 사라짐의 영역을 한꺼번에 채색했다. 실제로 그에게 닭의 이미지는 새벽을 깨우고, 어둠을 물리치며 밝은 세상을 불러들이는 빛의 전령으로 간주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들리는 닭의 울음소리는 그들에게 그저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는 신호가 아니라,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구원의 소리로 읽힌다.

그림과 영상 작업을 겸하는 양대만의 작품도 주목된다. 자동차와 거리의 풍경이 등장하는 이색 작품이다. 강렬한 물감의 흔적과 격렬한 색채의 분출이 마치 빛의 향연처럼 보인다. 친밀한 대상에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공존하는 모습이 영상미학처럼 다가온다.

숲의 생멸을 심상의 붓질로 잡아낸 장상철의 작품, 자연에서 느낀 연기적 관계와 그로 인한 경계 없음을 표현한 조재익의 그림, 바다의 생명력을 캔버스에 담아낸 조충래의 작품, 다양한 꽃과 곤충들에서 숨소리를 잡아낸 최욱의 작품등도 관람객을 반길 에정이다.

장은선 장은선갤러리 대표는 “작가들은 풍부한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다채롭게 드러내 보인다”며 “관람객들이 몸으로 그림을 대면하면서 오감으로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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