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VS 발주기관ㆍ조합 등 공사비 책정 놓고 대립각
공정ㆍ투명한 원가산정 필수…전문기관 역할 확대 기대
[대한경제=정석한 기자] 전국 건설현장이 공사비 분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 급등한 공사비의 증액 여부를 놓고 공공 부문에서는 시공사와 발주기관, 민간 부문에서는 시공사와 정비사업 조합(시행자) 등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조정위원회, 한국부동산원 등을 통해 해결에 나섰으나 공공ㆍ민간 부문 막론하고 양측 간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쉽지 않다.
이처럼 시공사와 발주기관ㆍ조합이 대립각을 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원가’ 산정을 둔 입장 차이 때문이다. 시공사 측에서는 코로나19 후 본격화한 원자재값 급등으로 인해 공사에 들어가는 원가도 상승하면서 실행률 100% 초과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반면 발주기관ㆍ조합 측에서는 예산 확보ㆍ증액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를 보전하기 쉽지 않다.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문기관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참사업ㆍ기술형입찰ㆍ정비사업 줄줄이 표류
2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발주기관과 시공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민간참여 공공주택건설사업(이하 민참사업)이 공사비 증액 여부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국토부가 10년 만에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조정위원회를 가동해 1차에서만 24건에의 민참사업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갈등이 워낙 첨예해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다.
공사비 부족을 우려해 첫삽을 뜨지도 못하는 공공공사들도 늘고 있다. 건설업계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입찰공고를 낸 후 경쟁 관계를 형성하지 못 하고 유찰된 기술형 입찰 프로젝트만 해도 30여 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형 입찰 유찰은 기타공사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종합평가낙찰제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는 광주도시철도 2호선 2단계 공사의 경우 8개 공구 중 3개 공구가 유찰됐다.
민간공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시공사와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사업 조합이 공사비 증액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하다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맡기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공사비 검증이란 시공사가 공사비를 일정비율 이상 증액하려는 경우 정비사업 조합이 부동산원에 의뢰해 공사비의 적정성을 검증받도록 하는 제도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공사비 검증을 의뢰해 완료한 건수는 2019년 3건에 그쳤지만 2020년 13건,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 30건, 2024년 18건(1∼7월 기준) 등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로 봐서는 연말까지 40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올해 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맡긴 사업장은 서울에선 이문1구역, 신반포18차, 삼선5구역 등과 경기도에선 과천시 주공4단지 등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아주 높은 곳들이 포함됐다. 이들 사업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표류한다면, 이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공인 원가계산기관 등 통해 원가산정 필요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원가 산정을 놓고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민참사업 등 공공공사를 보면 LH 등 공공기관은 토지를 공급하고, 시공사는 건축비를 부담하면서 공동으로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2020년 경부터 원자재값이 많게는 30% 이상 급등하면서 공사비도 상승했고, 이에 따라 실행률이 100%를 초과하는 건설현장도 부지기수로 나타나고 있다. 실행률이 100%를 넘는다는 사실은 자재 등 구매 원가가 건설현장에 애초 계획된 비용보다 높아져 적자 시공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민간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 의뢰가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정비사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원가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는 조합과 이대로는 적자를 피할 수 없다는 시공사의 대립이 팽팽하다는 방증이다.
대한건설협회가 최근 민간공사에 참여한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7% 이상이 공사비 상승에 따라 실행률도 20% 이상 상승해 부담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선 여러 대안이 지적된다. 공공공사에선 공사비 산정 기준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 표준품셈, 표준시장단가 적용 기준을 상세화해 현장 여건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간공사에서는 조합의 전문성 부족으로 원가 산정도 구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일부 있는 만큼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공정하고 투명한 원가 산정ㆍ검증을 위해 국가공인 전문기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기창 한국산업융합연구원 원장은 “공사, 제조, 학술, 용역 등의 원가 계산ㆍ검토에 정부 인정을 받은 기관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석한 기자 job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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