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사진: 연합ㆍ고려아연 제공 |
[대한경제=강주현 기자] 26일 영풍과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높이면서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쩐의 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고려아연은 ‘묻지 마 빚투’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한편 23년만에 4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을 발행하며 대항 공개매수를 위한 ‘실탄’ 확보에 나섰다.
MBK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은 이날 ‘고려아연 주식회사 보통주 공개매수 공고(정정)’를 내고 공개매수가를 기존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13.6% 올린다고 공시했다. 또 고려아연 지분경쟁에서 중요한 계열사인 영풍정밀의 주식 공개매수가도 기존 2만원에서 2만5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전날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종가는 각각 70만4000원, 2만2750원이었다.
당초 MBK는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302만4881주(지분율 14.61%)까지 공개매수할 계획이었다. 투입될 자금은 최대 2조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영풍에서 빌린 금액을 더하면 2조3000억원까지 투입 가능할 전망이다. 이를 고려아연 매입 주식 수(302만4881주)로 역산한 공개매수 최대 가능 금액은 약 76만원이 된다.
고려아연은 이번 영풍 측의 공개매수 가격 인상을 두고 “단기차입금 1조4905억원을 조달하더니 다시 3000억원의 빚을 내 적대적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이는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이번 공개매수를 위해 NH투자증권 등으로부터 대규모 브리지론(단기 차입금)을 받고, 영풍도 3000억원을 홀딩스 측에 빌려준 것을 말한다.
고려아연 측은 이어 “고려아연의 유무형 자산을 나눠 팔면 원금과 이자를 갚고도 남을 것이란 계산이 선 듯하다”며 “국가기간산업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위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회동 등 백기사(우군) 확보에 힘써왔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발걸음도 더 바빠졌다.
그간 업계에선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선 최소 1조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봤는데, 이번 공개매수 가격 인상으로 필요한 자금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기존의 무차입 경영 기조를 깨고 이례적으로 CP를 발행해 40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CP 발행의 목적이 운영자금 마련에 있다는 입장이나, 업계에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실탄 확보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본다. 차입 거래가 불필요할 정도로 풍부한 고려아연의 유동성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말 연결기준 고려아연이 보유한 현금(현금및현금성자산+단기금융기관예치금+단기투자자산)은 2조1277억원이다. 차입금을 전부 상환해도 8000억원 가까운 현금이 남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4일엔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료인 전구체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은 경제안보상 이유로 정부 승인이 있어야 외국 기업에 매각될 수 있다.
한편, 영풍은 2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MBK와 연합한 배경과 공개매수 가격 상향 등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다. 간담회는 강성두 영풍 사장이 주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분쟁 사태 이후 영풍이 단독으로 간담회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주현 기자 kangju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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