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절대 미각’이 필요하다.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적 재능은 필요하다. 타고난 재능에 오랜 시간의 반복적 노력이 더해지면 예술가가 된다. 예술가의 등급은 얼마나 오랫동안 수정 반복을 계속했느냐가 결정한다. 거칠게 말해서 재능보다 더 많이 훈련한 사람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세상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피카소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는 92세에 사망했다. 평생 1만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어림잡아 10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계산하면 8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한 점씩 꾸준히 그림을 그린 셈이다(3만점÷80년=1년 375점).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인정되는 이유다. 타고난 재능도 노력이 없다면 재능이 없는 것이다. 세상엔 재능 있는 낙오자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이 변했다. 이제 피카소의 피와 땀도 별 소용없게 되었다. 인공지능 AI가 그림을 대신 그려주기 때문이다. AI는 내가 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근사한 그림을 그려준다. 수준도 높다. 머잖아 사람이 죽어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더 잘 그리고, 더 새롭게 그릴 것이다. 이제 화가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수련 과정은 필요 없다. 대박!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하는 나도, 당신도, 그저 말 몇 마디를 프롬프트에 적어넣으면 AI는 피카소가 울고 갈 정도로 훌륭한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훈련하지 않아도 훌륭한 결과물을 얻을 것이다. 이제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다. AI가 있으니까. 이제 예술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1967, 남진)’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다. 가사에서 여자는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예뻐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가 아니듯이, 결과물이 근사하다고 다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되려면 속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속마음은 작가의 관점일 수도, 철학일 수도,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AI가 만든 결과물은 생각 없는 기계가 프로그램에 따라 생각 없이 생산된 것이다. 그냥 재미있는 장난이다. 장난치다가 좀 근사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곡해다.
일상의 문제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3줄 요약’은 꽤 유용하게 쓰인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3줄 요약은 3줄 요약을 하는 사람에겐 성장의 엄청난 토대가 되지만, 3줄 요약을 읽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3줄 요약을 읽은 사람은 어떤 문제에 대해 핵심 내용을 알게 됐다고 착각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쳐놓은 프레임에 걸려들어 자기 생각은 없는 상태가 된다. 결국 3줄 요약을 읽는 것은 가성비가 없다. 3줄 요약은 직접 해야 가성비가 높아진다. 직접 하면 마디마디에 생각이 쌓인다. 예술도 마디마디 생각이 쌓여야 한다. 앞으로 AI는 사람에게 끝없는 즐거움과 놀라움을 제공할 것이다.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재미있으면 됐지. 그러나 다채롭고 화려한 볼거리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며, 아름다운 소리는 귀를 먹게 하며,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은 입맛을 버리게 만들고, 말 달리며 사냥하면 마음을 발광하게 만드니, 생각 없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AI에 혹해 살기보다 나를 키우는 3줄 요약을 충실히 할 때다.
김규철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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