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0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부당 합병ㆍ회계 부정’ 혐의 관련 2심 1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 : 연합 |
[대한경제=한형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0일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행위ㆍ시세조종) 및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 관련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했다. 지난 2월 1심 선고 이후 약 8개월만이다.
이날 오후 1시40분쯤 서울고등법원 출입구 포토라인에 검은색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항소심 입장과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으로 발길을 향했다.
오후 2시3분께 시작돼 오후 5시48분께 마무리된 이날 재판에서 이 회장은 줄곧 곧은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굳은 표정을 이어갔다. 때로는 하얀 와이셔츠의 목깃(카라)을 매만지며 검찰과 변호인단 양측의 주장이 담긴 프레젠테이션(PT) 화면을 주목하기도 했다. 두 손을 각각 다른 쪽 팔 사이에 마주넣고 고심하기도 했고, 안경을 고쳐쓰거나 벗은 채 검찰과 변호인단의 주장을 경청하기도 했다.
2심 재판부는 내년 1월 말 전까지 선고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부장판사 백강진)는 이날 ‘부당합병ㆍ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을 비롯한 전 현직 삼성 임직원에 대한 첫 공판을 시작했다. 항소심에서는 원심에서 무용지물된 서버ㆍ외장하드 등 전자정보 등의 증거인정 방안과 새롭게 제출된 증거를 놓고 검사와 변호인단 간의 공방이 이어졌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검찰이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시한 증거는 2149개에 달했다.
2심 재판부는 공판 시작에 앞서 피고인 신분 확인 등을 마친 뒤 “오늘 심리는 위법 수집 증거 변론과 새로 제출하는 증거를 살펴보는 조사”라며 “2100여개의 새로운 증거를 총 3시간 걸쳐 조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재판에서는 검찰이 2019년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서버를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자료 등이 위법하게 수집됐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 간 공방이 오갔다.
검찰은 해당 증거의 적법 수집 절차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검찰은 “압수수색한 에피스 직원에 대한 외장하드 선별절차 탐색은 적법하게 진행됐으나 원심은 이 판단 자체를 누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정보 은닉이 확인됐다”고 했다. 또 “압수수색과정에서 일부 절차적 하자가 존재하더라도 법원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 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취지 반하는 예외적 경우라면 그 증거를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며 “원심의 증거판단 오류를 바로 잡아달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1심에서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판단을 받은 증거들과 동일한 단계를 거쳤다며 이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이 없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별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앞서 1심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영장에 기재된 압수 대상과 방법의 제한을 위반했다는 이유가 꼽혔다.
아울러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이 공판준비기일 이후 재판부에 제출한 1ㆍ2차 공소장 변경 신청 내용을 논의했다. 재판부는 지난 7월25일 신청한 1차 공소장 변경은 허가했다. 해당 변경 내용은 △형식적 이사회 결의를 통한 합병 거래 착수 및 업무상 배임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나스닥 상장 관련 허위 추진 계획 공표 △에버랜드 관련 허위 개발 계획 등 10가지 항목에 대한 사실관계를 보다 상세하게 추가ㆍ보완한 게 핵심이다.
재판부는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회계 부정 등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최대한 넓게 잡는다면 충분히 포함시킬 수 있다”며 “피고인들이나 변호인들의 방어권을 침해할 여지가 없어 공소장 변경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이 지난 27일 신청한 2차 공소장 변경 내용에 대해선 추가적인 서증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차 공소장 변경 이유에는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삼성바이오의 증권선물위원회 제재 처분 불복 소송에서 일부 회계처리 기준 위반이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 내용이 반영됐다.
아울러 검찰이 1월27일로 예정된 선고일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재판부는 조정 여지를 뒀다. 재판부는 다음달 14일에는 회계 부정 부분을, 다음달 28일과 11월11일에는 자본시장법 위반 부분을 심리할 예정이다. 11월25일에는 검찰의 구형과 함께 변론을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을 열 계획이다.
법조계는 재판부의 계획대로 항소심이 비교적 빨리 마무리되더라도 재판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은 상고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상고심을 거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2∼3년가량 더 걸릴 것으로 보여 삼성그룹과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장기화가 삼성의 경영 활동에 어려움이 더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장변화에 따른 시급한 판단력을 요구하는 대형 인수합병(M&A) 추진은 물론 미래 먹거리 방향타를 조정하기 위한 결단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등 미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반도체 기술 패권을 놓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오너리스크는 치명타가 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지난 3년간 삼성전자의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까지 5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엔비디아 납품은 지연되고 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점유율도 대만 TSMC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여기에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도 주춤한 상황이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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