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종무 기자] 올해 47년된 주택청약제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고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청약 가점제 도입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19일 서울 용산구 남산에서 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 |
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택청약제도에서 청약 가점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수억원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이른바 ‘로또 청약’이 잇따르면서 가점 경쟁이 심화하면서다.
청약 가점제(총점 84점)는 무주택기간(32점), 청약저축 가입기간(17점), 부양가족 수(35점)에 따라 합산 점수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정하는 방식이다.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구조다.
하지만 최근 잇달아 강남권에서 진행한 청약 결과를 보면 우선 ‘청담 르엘’ 1순위 평균 당첨 가점이 75.6에 달했다. 15년 이상 무주택 5인 가구 만점(74점)보다 높았다. 지난달까지 강남권에서 분양한 ‘메이플 자이’, ‘래미안 원펜타스’, ‘래미안 레벤투스’, ‘디에이치 방배’ 등 4개 단지 평균 당첨 가점도 73.1점, 최저는 71.9점이나 됐다. 15년 무주택 4인 가구 만점자(69점)도 당첨이 어려운 점수였다.
상황이 이렇자 온라인뿐 아니라 항간에선 “조선시대에도 서울에서 5인 이상 가족은 찾기 어려웠다”, “부모도 모시고 강남에 청약도 넣는 화목한 가정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등 비아냥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에서는 부모나, 배우자 부모, 성인 자녀 등을 위장 전입시켜 부양가족을 늘리는 편법이 판치고 있다는 의심도 있다. 실제로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부정 청약 1116건 가운데 위장 전입(778건)이 70%에 육박했다.
청약제도는 1977년 ‘국민주택 우선 공급 규칙’에 따라 공공 부문에 우선 선보인 뒤 이듬해 민영주택에도 적용하면서 현재의 모태가 됐다. 이후 전매 금지, 재당첨 기간 확대 등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며 변화해왔다.
청약 가점제는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 공급을 취지로 2007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부동산 호황기를 맞은 2000년대 들어 강화한 규제이지만, 급속한 저출생ㆍ고령화로 1~2인 가구 증가 등 빠르게 변화하는 최근 인구 구조를 청약제도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의 맹점이 드러나면 고치기 시작하는 후행적인 성격 탓에 급변하는 시장 상황과 사회 변화에 뒤처진다는 설명이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현행 무주택기간에 한도 점수(32점)를 폐지하고 가점 만점(84점)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현실에 맞는 청약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일명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 개편은 들여다보고 있지만 가점제 손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박상우 국토부장관은 7일 취임 첫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러한 청약제도 관련 현안에 의견을 피력할 전망이다. 부동산 경기와 시대 흐름에 따라 수정을 거듭해온 청약제도에 어떤 변화를 줄지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무 기자 j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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