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헌법재판소가 결국 멈춰 선다.
이종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영진ㆍ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이 오는 17일 퇴임하는데도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는 국회가 손을 놨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명의 재판관 가운데 3명이 비어 있으면 사건 심리가 불가능하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9명 중 국회에서 3명을 선출한다’고만 규정할 뿐 국회 몫의 재판관 추천이나 선출 방식에 대해선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는 재판관 추천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거 3∼5기 재판부를 구성할 때처럼 여야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은 관례대로 합의해 추천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2기 재판부를 구성할 때처럼 자신들이 3명 중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국회 의석은 민주당 170석, 국민의힘 108석으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1.6배가량 많다.
헌재 마비 사태는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다. 제20대 국회 때인 2018년에도 여야는 재판관 3명의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야 부랴부랴 재판관 추천방식에 합의했고, 그만큼 후속 절차도 늦어졌다. 국회는 정부처럼 따로 인사검증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부실한 자체 검증이 인사청문 과정에서 위장전입 의혹에 코드인사 논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헌재는 한 달가량 멈춰 섰다. 게다가 국회 선출 몫인 재판관 3명은 본회의 표결 절차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재판관 선출 방식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면 우선 여야 몫 1명씩이라도 선출해 헌재 마비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여야는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2018년에도 3명의 재판관 후보자 가운데 인사청문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던 이영진 재판관 선출안이라도 먼저 처리해 헌재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법조계에서는 거대 양당, 특히 민주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헌재를 멈춰 세우려고 의도적으로 재판관 인선 논의를 미루고 있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등 탄핵소추를 당한 공직자의 직무정지를 이어가기 위해 아예 헌재 심리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야권이 심심찮게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추진된다면 헌정 마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헌재는 대법원과 함께 우리나라 사법부를 구성하는 양대 헌법기관이다. 헌재의 업무를 다른 헌법기관이 맡을 수도 없다. 당장 정치적인 사건 이외에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헌법소송 사건이 잔뜩 쌓여 있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재판관 추천 방식을 논의하는 동시에 합의가 이뤄지면 후속 절차를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능력도 뛰어나고 인품도 훌륭한 후보군을 추려놔야 한다. 헌법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끝낼 결단이 필요하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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