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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방 재생의 선결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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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0-29 04:00:13   폰트크기 변경      

변덕스런 날씨가 이어진 여름의 끝이었다. 창원에 계신 36명의 공무원들에게 설득력과 트렌드와 창의력에 대해 강의했다. 창원은 쾌적해서 걷기에 좋았다. 롯데몰이 포진한 중앙로 반듯한 대로 옆으로 번듯한 빌딩들이 사방으로 뻗어있고 그 주위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지금 창원은 백만명 남짓한 인구에서 한 해 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관공서와 식당이 몰려있는 창원대 주변이나 추상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경남도립미술관도 썰렁했다. 수업을 개설한 안성수 교수는 풀죽은 목소리로 관광 상품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창원의 볼거리는 진해 군항제말고도 많다. 경화역에도 아름다운 벚꽃이 들어서 있고 여좌천엔 물길 옆으로 시원한 그늘이 이어져 한여름에도 걸을 만히다. 용지문화공원엔 호수를 둘러싼 쾌적한 산책로와 너른 잔디밭 위 대형조각작품이 펼쳐져 있어 노을이 지고 분수쇼가 시작되면 멋진 야경을 연출했다. 가족 단위라면 촬영장으로 쓰이는 해양드라마세트장이나 4ㆍ19혁명의 발원지인 국립 3ㆍ15민주묘지도 좋다. 어린이와 함께라면 창원로봇랜드도 가볼 만하다. 그런데 왜 관광객이 늘지 않는 걸까? 마케팅은 시대와의 호흡이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달라진 때문이다. 그들의 감수성과 생활 양식을 읽어야 그들을 끌어올 콘텐츠가 떠오를 것이다.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 수가 9만4명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2만여명이 증가한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중앙 전시실 입구, 널찍하고 어두운 공간에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놓인 ‘사유의 방’이 보인다. 안내 문구처럼 ‘두루 생각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흐르는 조용한 공간이다. 15세기 전 만들어져 턱을 괴고 침묵하며 선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그들의 머리 위로 우주의 별이 떠있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기대거나 앉거나 가방을 베고 누워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멈추고 분초와 분절의 시대를 건너는 스스로를 쓰다듬는다. 이 전시의 창안자는 갑진년을 맞아 '용을 찾아라'라는 기획전을 구상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박물관 사이 남산타워가 훤히 보이는 곳에 포토존을 설치해서 이곳을 찾은 이국인들이 서울에 잘 있다는 소식을 사방으로 퍼나르게 했다. 높이 8m의 LED광개토대왕비, 정조의 화성행차를 재현한 60m 파노라마 영상, 인공지능을 이용한 조선시대 스타일의 초상화도 이들의 아이디어다. 이제 관광은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체험하는 일이다.

창원으로 돌아가보자. 강원도 양양의 서핑족은 여름 한철이다. 창원을 사계절 해양 스포츠의 메카로 키워볼 순 없을까? 5월만 되도 남부지역은 땡볕 더위다. 게다가 전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 겨울엔 서핑족의 체온을 보존하는 수트 기술이 도울 것이다. 서핑보드나 수상스키를 즐기며 다져진 몸매와 멋진 포즈를 뽐내며 이국적 여가 문화를 선망하는 활동적인 젊은 세대(Active Young Generation)의 체험과 과시 욕구를 보자는 말이다. 3.15 해양누리공원과 연계해서 동남아에서 흔히 보는 나이트 마켓같은 대형 야시장을 열어 체류형 관광으로 발전시켜 볼 수도 있다. 마산도심의 야경과 8자 보도교, 마창대교까지 조망할 수 있어 마산어시장과 창동예술촌과 연결된 야간 집객의 핫스팟으로 조성할수도 있다. 젊은 노마드족의 유입을 위해 해양의 자연환경과 지역 인프라를 활용해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워케이션 오피스 운영도 함께 검토해 볼만하다. 물론 이 모든 가능성은 현실적 타당성 검토와 예산과 행정의 적극적 지원이 뒤따라야 실현될 것이다.

경남도립미술관 2층에 전시된 하종현작가의 그림은 성긴 재질의 화폭 뒤에서 밀감을 밀어낸 후 앞에서 붓으로 펴서 그린 역발상의 작품이었다. 안찬홍작가의 작품속 맨드라미는 슬프고도 무참한 선홍빛을 띠고 있었는데 세월호의 비극을 담아 고개마저 떨구고 있었다. 두 작품에 눈이 간 것은 시대의 흐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방 재생의 문제도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는 능동적 자세가 먼저다. 아무 변화가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술이든 관광이든 매한가지다.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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