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가문의 장지를 팔면서 제사를 모시는 다른 친족의 동의 없이 조상의 묘를 발굴해 화장했다면 ‘유골손괴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분묘발굴ㆍ유골손괴 혐의로 기소된 AㆍB씨의 상고심에서 유골손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모자 관계인 AㆍB씨는 2020년 7월 충북 천안의 임야에 있는 B씨 증조부와 조부모 등의 합장 분묘를 중장비를 동원해 발굴한 뒤 수습된 유골을 화장해 안치하는 등 유골을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장지를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면서 민법상 제사 주재자인 다른 친족들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 과정에서는 A씨 등의 행위를 유골손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형법은 분묘를 발굴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분묘를 발굴해 유골을 손괴하면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ㆍ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 등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분묘발굴 혐의는 유죄로, 유골손괴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감형했다. 현행법상 적법한 장사 방법인 화장 절차에 따라 종교적ㆍ관습적 예를 갖춰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했다면 유골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사자의 유체ㆍ유골은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 것이므로, 그에 관한 관리 및 처분은 제사주재자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제사주재자 등의 동의 없이 함부로 유골의 물리적 형상을 변경하는 등 훼손하는 것은 사자에 대한 경애ㆍ추모 등 사회적 풍속으로서의 종교적 감정 또는 종교적 평온을 해치는 ‘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화장 절차에 따라 유골이 안치됐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A씨 등의 손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형법상 유골손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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