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 전력망 구축사업에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입법적 뒷받침은 수개월째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22대 국회 들어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9건의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5개월이 지나도록 해당 상임위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못됐다. 여야 정쟁에 휘말려 국가경쟁력이 달려 있는 법안이 뒷전에 밀려 있는 것도 문제지만, 내용 면에서도 결함 사항에 대한 보완 작업이 미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한전이 2036년까지 송ㆍ변전망에 투자해야 할 비용은 약 56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부채 규모가 200조원을 넘어가는 한전의 자체 예산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를 감안해 여야는 특별법안에서 ‘정부의 재정적ㆍ행정적 지원’을 명문화했지만 지자체 등 관계기관 협조 의무, 장관의 갈등 조정 역할 등 주로 행정적 지원에 비중을 뒀을 뿐 재정적 지원에 대해선 원론적 수준에 그친다. 특히 여당 의원안에는 ‘국가가 전력망 설비가 설치되는 지자체, 사업시행자 등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간접 지원’을 규정하고 있고 그마저도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2년 연속 세수결손에다 내년도 예산안도 긴축재정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전력망 사업에 재정을 얼마나 투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재정적 지원을 보다 분명히 하는 차원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문한다. 실제 민주당 의원 법안에는 ‘전력망 확충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사업시행자(한전)에게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으나 정부여당의 입장이 변수다. 도로, 철도 등 SOC 사업에 재정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자본이 투입되듯이 전력망 사업에도 민자사업이 가능하도록 법적 장치 마련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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