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
[대한경제=한형용 기자] 기업 이사에게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로 상법이 개정되면 인수합병(M&A)이나 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4일 ‘미국 M&A 주주대표 소송과 이사 충실 의무’ 보고서를 통해 “영미법계의 이사 신인의무(fiduciary duty) 법리를 한국 상법에 무리하게 도입하면 기업이 소송에 시달려 가치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신인의무란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충실의무 등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M&A 계획을 발표하면 대부분 이사가 신인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대표 소송(소수주주가 이사 등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을 당한다고 한경협은 설명했다. 실제 한경협이 2009∼2018년 미국 상장회사의 1억달러(1380억원) 이상 규모 M&A 거래 1928건을 분석한 결과 매년 인수합병 거래의 71∼94%가 주주대표 소송을 당했다.
주주들은 공시 정보 부족 또는 중요 사항 누락 등을 이유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는데, 상당수는 회사 측과 ‘단순 추가공시’나 ‘합병 대가 상향 조정’ 등의 방식으로 화해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게 한경협의 설명이다.
이사의 경영 판단에 대해 형법상 배임죄가 적용될 가능성도 기업인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면 이사에 대한 주주대표 소송뿐 아니라 배임죄 고발도 빈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 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체계에 전혀 맞지 않는다”며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큰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총 8건 발의된 상태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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