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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동주택 구조형식의 대부분은 벽식구조이다. 벽식구조는 기둥과 보 없이 벽체만으로 건물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가격과 짧은 공사기간, 효율적인 건설현장 운영 등에 많은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신속한 주택공급이 필요했던 1980년대 이후 공동주택 구조형식의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벽식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단위세대 내부구조의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가구 구성원이 변화하거나 생활방식이 바뀌는 경우에도 하중을 지탱하는 고정된 내력벽체로 인해 공간을 변경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거주자는 못마땅한 세대평면을 감수하며 계속 거주하거나 아니면 정든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근대건축의 거장 르꼬르뷔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현대 공동주택의 효시 격인 유니테다비타시옹을 기둥식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설계하였고, 프랑스 마르세유, 낭트 그리고 독일 베를린에 각각 건설하였다. 1952년에 최초로 건립된 마르세유의 유니테다비타시옹은 7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공동주택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이 갖는 역사성과 뛰어난 기능적ㆍ미학적 요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공동주택이 있었다. 1957년 준공된 종암아파트와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 등이 그 사례이나, 지금은 모두 재건축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교체 주기는 30~40년 정도에 그쳐 평균 100년 이상 유지되는 독일, 영국 같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수준이다. 수명이 짧은 이유는 건축물의 내구성과 보존 가치의 중요성 영향도 있지만, 용적률 여유분에 따른 재건축 이후의 부동산 자산 상승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물리적 수명을 다하지 않은 공동주택들도 재건축으로 대체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유 용적률의 부족과 공사비 상승 등으로 재건축 사업추진이 어려워지고 있다. 정주여건이 우수한 1기 신도시의 경우에도 사업성 확보가 지난하여 노후계획도시특별법에 의한 용적률 상향 등의 특례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재건축 이후의 상황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2025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고, 가구증가율도 2040년부터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가구 구성원 비율은 2020년 기준으로 1ㆍ2인 가구가 59.2%, 4인 가구가 15.8%인 반면에, 2050년에는 1ㆍ2인 가구가 75.8%, 4인 가구가 6.2%로 대폭 변화될 전망이다.
이와 같은 인구ㆍ가구 증가율의 감소와 가구 구성원의 변화는 재건축 수요를 급격히 약화시키는 반면, 세대 내부공간의 가변성에 대한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중동과 산본 재건축의 기준용적률은 각각 350%, 330%로 발표되었다. 이 정도의 용적률이면 입지가 특별한 역세권 등을 제외하고는 신규 수요의 한계와 사업성 결여로 인해 재건축 이후의 재건축이 아예 불가능할 수 있다.
이제는 30~40년 수명만을 유지하는 기존의 개발논리식 벽식구조 공동주택 건설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주자의 다양한 가구 구성과 삶의 방식에 따라 내부공간을 자유로이 고쳐쓸 수 있는 백년 이상의 공동주택을 건설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콘크리트의 고강도화, 유지보수가 용이한 설비시스템, 에너지 절약과 자원 순환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설계 등이 요구되지만, 가장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공간 변화가 자유로운 라멘구조 또는 무량판구조의 전면 적용이다. (무량판구조는 설계와 시공의 정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신중한 적용이 요구된다.)
구조형식 변경은 공사비의 일부 상승을 수반한다. 일반적으로 라멘구조는 벽식구조에 비해 5% 내외, 무량판구조는 3% 내외로 증가한다. 최근의 건설원가 상승 현실을 감안할 때, 구조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가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이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 재건축으로 인한 미래 사회적ㆍ환경적 비용의 막대한 낭비를 감안하면, 인센티브에 의한 사업성 보전은 결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투자이자 지속 가능한 도시건설을 위해, 이제는 단기적 비용보다 장기적 가치를 중시하는 건설 패러다임의 전환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박철흥 한양대학교 ERICA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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