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최근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하자보수 비용에 대한 최초 감정 결과와 재감정 결과에 10배가량 차이가 나자 법원이 ‘재감정 결과를 기준으로 하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놔 법조계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
민사소송에서 전문가들이 내놓는 감정 결과는 소송의 승패와 가액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하자소송 등 건설 관련 분쟁에서는 감정 결과가 더욱 중요하다. 하자의 종류와 원인 등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 이를 해결하려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만큼, 건설분야의 비(非)전문가인 판사들로서는 전문가의 감정 결과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민사소송법은 감정인이 ‘양심에 따라 성실히 감정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거짓감정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라고 선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형법은 법률에 따라 선서한 감정인이 허위로 감정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감정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동일한 감정항목이라도 하자로 봐야 하는지 감정인마다 의견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하자보수비를 산정할 때도 저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사건처럼 같은 건물, 같은 부분에 대한 감정 결과가 감정인에 따라 세대당 최소 몇십만원에서 최대 몇천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일도 있다. 그야말로 ‘복불복(福不福)’인 셈이다.
그러나 법원이 감정인을 통제할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재판이 끝난 뒤 재판장이 감정인을 평가해 연말에 부적격자를 가리는 사후관리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이마저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해 사법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민사건설재판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전국 법원에서 공사비 등 감정인이 선정된 사건 1만1162건 가운데 평정 결과가 입력된 경우는 263건(2.35%)에 그쳤다.
재판부마다 판단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개별 하자항목 가운데 통상 보수비용이 가장 큰 ‘층간균열’이 대표적이다. A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건설소송실무연구회가 내놓은 ‘건설감정실무’에 따라 층간균열 폭이 0.3㎜ 미만인 경우에도 충전식 공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B재판부는 “건설감정실무에서 정한 기준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균열 폭에 관계없이 충전식을 고집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소송 당사자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법원도 ‘고무줄 감정’을 손보고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법원장의 자문기구인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제2차 회의에서 감정 절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감정 절차의 지연, 감정인의 중립성, 감정 결과의 공정성ㆍ충실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은 만큼 감정 절차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건설 분쟁을 둘러싼 ‘부실ㆍ과잉 감정’ 문제가 소송 장기화는 물론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하루빨리 감정 제도를 제대로 개선하길 바란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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