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우들이 소리꾼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몇 년간 연습해서 직접 불렀다니 감탄스러울 정도다. 어느 배역 하나 허투루 부르지 않는다. 작은 역할일지라도 배우들이 실제 소리꾼의 모습처럼 노래하고 연기해 모처럼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음미하는 중이다. 이번주가 마지막 방송이라니 아쉬울 뿐이다.
극중 정년(김태리 분)의 엄마 채공선(문소리 분)이 지난주 방송에서 부른 ‘추월만정’ 장면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됐다. 심청이가 황후가 된 후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르는 소리인데, 판소리 전공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노래라 한다. 문소리는 이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1000번도 넘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채공선은 목이 ‘부러져’(성대가 상해)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정년에게 과거 한 명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천적인 ‘떡목’(탁한 목소리)임에도 명창이 된 정정렬이라는 소리꾼이 있었지. 그분이 춘향전 소리를 하면 다 울었어. 타고난 떡목인데도 다듬고 다듬어서 거칠어도 힘이 있는 소리로 바꿔놨어. 그러니 듣는 귀에는 빈 곳이 하나도 없이 다 채워져서 들릴 수밖에. 그래서 사람들은 없는 소리, 무(無)를 부른다고 했었다.”
실존인물이기도 한 판소리 명창 정정렬의 이야기다. ‘춘향가’로 유명한 정정렬 명창은 조선 말기 판소리 5대 명창으로 국창(國唱)으로 불렸던 이다. 그는 타고난 소리가 탁하고 음량이 부족해 고음을 내기 힘들었지만 끊임없이 연습하고 수련해 결국 명창으로 거듭났다.
자신만의 소리를 갈고 닦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소리, 과거엔 없던 소리, 즉 무(無)의 소리로 빈 곳을 채워 결국 빈틈이 없는 소리를 만들어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중생유(無中生有),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것이 바로 이 말 아닐까.
생뚱맞은 생각이지만 드라마 정년이를 보면서 정치인들이 떠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상대 당 의원들을 향해 고성을 내지르는 국회의원들 중엔 거의 ‘득음’에 이른 이도 적잖은 것 같다. 남몰래 복식 호흡과 발성법을 연습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려면 어디 가서 남들에게 소리에서만큼은 밀리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하는 걸까.
상대를 누르기 위해 내지르는 소리는 시끄러울 뿐이다. 그저 소음에 가깝다. 아무리 크게 질러도 아무런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진짜 소리’로 국민을 감동시키는 그런 정치인을 원한다. 아내의 의혹과 논란에 대해 동문서답하지 않는 대통령, 공식석상에서 최소한 반말은 하지 않는 대통령, 언론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적어도 메모라도 해서 되묻지 않는 대통령, 무엇보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제대로 헤아리고 최선을 다해 사과하는 대통령 말이다.
부디 소란스러운 고성과 의미 없는 막말이 수도 없이 오가는 이곳에서 ‘진짜 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암담해 보이는 우리 정치에 ‘무중생유(無中生有)’, 그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유(有)를 만들어내길 진정 바란다.
조성아 기자 jsa@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