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업계 “현장서 10년 넘게 일해도
전문대ㆍ4년제 졸업자 시험조차 못봐
실무경험 인정 안하면 인력난 심화”
일각선 요건 완화 반대 목소리도
“5년제 교육, 능력 보장하는데 필수”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 건축사사무소들이 인력난까지 겹쳐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오는 2027년부터 미인증 대학 졸업자의 건축사시험 응시가 사실상 제한되면서 신규 설계인력 수급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중소 설계사를 중심으로 자격시험 응시요건 완화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건축설계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중소 건축사사무소들은 심각한 수준의 인력난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의 한 10인 미만 건축사사무소 A사 대표는 “올해만 3건의 민간 프로젝트를 인력 부족으로 포기해야 했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신입사원을 키우기로 해 6개월째 구인광고를 내고 있는데 지원자가 전무하다”고 전했다.
경기도의 한 중소 건축사사무소 B사 임원은 “건축업황 부진으로 근무 여건이 악화하자 채용시장에서 대ㆍ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는 모양새”라며 “예비시험제도를 통해 설계사에 발을 들였던 4년제나 전문대 졸업자들의 유입도 갈수록 줄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 2011년 발표한 건축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2027년부터 시험 응시자격이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의 5년제 건축학인증 대학 졸업자로 한정된다.
4년제나 전문대 졸업생의 경우 건축전문대학원 진학을 통해서만 응시자격을 얻을 수 있어 진입장벽이 높아지게 된다.
이 같은 업계의 고충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건축사 11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6.1%가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인 이하 소규모 사무소의 경우 채용이 원활하다는 응답이 14%에 불과했다.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 설문조사를 보면 전남(65.7%), 울산(58.8%), 강원(54.1%) 등 비수도권 지역의 채용 의사는 높은 데 반해, 채용이 원활하다고 응답한 지역은 서울(22.9%), 인천(16.2%), 부산(14.0%) 등이 더 높았다.
대전지역 건축사사무소 C사 대표는 “지방은 수도권보다 일감이 없어 급여 수준이 낮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힘들다 보니 우수한 인재들이 다 서울로 빠져나가는 실정”이라며 “이에 더해 실무 경험이 풍부한 비인증대학 직원들의 건축사 응시 기회의 폭이 크게 줄어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건축계에서는 현행 제도가 지속될 경우 인력난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건축설계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10년 넘게 일했어도 전문대나 4년제를 나온 직원들은 건축사 시험조차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실무 경험을 유연하게 인정하지 않는 현행 제도로는 인력난 해소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직격했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시험 자격을 봉쇄하는 방향은 장기적으로 건축분야 인력 생태계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응시자격을 확대하고 구조와 안전 등 기술 과목을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요건 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견 건축사사무소 D사 임원은 “건축사는 의사, 법조인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전문가”라며 “5년제 교육은 건축사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건축사법 소관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1년 건축사법 공표 당시 법적 문제를 검토했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과규정을 마련, 예비시험제도를 통해 구제방안을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건축설계업계는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전향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E사 대표는 “주니어들이 건축계를 떠나는 탈건(脫建) 흐름에 2027년 응시제한 조치까지 더해지면 중소사의 인력수급 체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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