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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음극재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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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1-27 08:44:46   폰트크기 변경      
김태형 산업부장

김태형 산업부장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바야흐로 ‘배터리(이차전지)의 시대’다. 휴대폰, 노트북, 자동차, 데이터센터, 풍력ㆍ태양광 발전소까지…. 일상이 배터리다.

배터리에도 급이 있다. 전기차의 경우 주행거리가 길고 배터리 출력이 높은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세다. 양극과 음극을 리튬이 오가며 충ㆍ방전하는 원리다. 이 중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소재다. 리튬ㆍ니켈ㆍ코발트ㆍ망간ㆍ철 등 구성 원료의 함량과 구조를 최적의 레시피로 조합하는 것이 기술력이다. 한국에선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LG화학 등이 대표기업이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ㆍ삼성SDIㆍSK온)가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문제는 배터리의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음극재다. 현재 글로벌 상위 10대 음극재 기업 중 9곳이 중국 기업이며, 유일한 비중국 기업이 한국의 포스코퓨처엠이다. 음극재는 배터리 재료 원가의 약 14%로, 양극재보다 수익성이 낮다.

음극재는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면서 전류를 흐르게 한다. 음극재로는 흑연을 주로 쓴다. 규칙적인 층상구조로 리튬이온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저렴한 재료여서다. 하지만 세계 흑연 공급망은 중국 천하다.

중국 기업과 외롭게 싸우고 있는 포스코퓨처엠의 음극재 사업은 악화일로다. 올해 3분기 음극재 매출이 전분기 대비 51% 급감한 246억원에 그쳤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더해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와 미국의 FEOC(해외우려집단) 규제 유예라는 ‘겹악재’를 겪고 있어서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포스코퓨처엠이 음극재를 포기하면,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가 완전히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 이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일본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의 수출을 제한했다.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의존도가 93.2%에 달했던 상황에서, 우리 주력 산업을 겨냥한 명백한 ‘경제 공격’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됐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를 이뤄냈고, 일본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다. 당시 정부는 사태 발생 한 달 만에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대책을 마련하고 R&D 예산을 투입했다. 소부장 특별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고 지원 대상도 확대했다. 이러한 발 빠른 대응이 지금도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의 포스코퓨처엠 방문은 정부가 음극재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중국의 전기차 생산 보조금이나 미국의 셀 생산 보조금처럼 음극재 생산 보조금 지급을 검토해야 한다.

포스코퓨처엠도 일본 수출규제 당시 우리 기업들이 그랬듯 공급망 다변화에 힘쓰고 있다. 호주 기업과 아프리카 광산의 흑연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탄자니아 광산 투자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는 우리에게 공급망의 안정성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의 문제임을 각인시켰다. 음극재 산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기차 시대의 핵심 소재를 특정 국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


김태형 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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