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에 주주 포함 상법 개정 반대
상장사 재무거래 시 주주보호 장치 강화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대한경제=권해석 기자]금융당국이 2일 계열사간 합병에 현행 주가로 돼 있는 합병가액 산정기준을 폐지하고,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상장 때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공모신주의 20% 범위 내에서 우선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자본시장법 개정에 나서기로 한 데는 최근 대기업의 리밸런싱(사업구조 개편)이 소액주주의 피해로 연결되고 있다는 시장의 비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야당이 상법을 고쳐 회사로 돼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려는 것에 경영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쏟아진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간 대기업의 사업구조 개편이 대주주 이익 극대화와 소액주주 피해로 이어진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두산그룹이 두산로보틱스보다 매출액이 180배 많은 두산밥캣을 상장폐지하고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려던 시도가 대표적이다. 합병가액이 주가로 정하고 두산밥캣 1주를 두산로보틱스 0.63주와 바꾸겠다는 내용을 공개되면서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후 금융당국까지 나서 제동을 걸면서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의 상장폐지 계획은 접었지만,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 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하려는 계획은 계속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합병과 중요한 영업ㆍ자산의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ㆍ이전, 분할ㆍ분할합병 과정에서 이사회가 의견서를 작성해 공개하고, 실제 회사 가치를 반영한 합병 가액 산정기준을 외부평가기관에 평가를 받도록 하면 소액주주 이익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공모신주의 20% 내에서 우선배정하도록 한 것도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 방안이다.
특히,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바꾸는 내용을 상법 개정을 추진한 것도 정부가 자본시장법 개정 추진에 나선 이유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다.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 등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과거 LG화학의 LG에너지솔류션 물적분할과 같이 이익이 나는 사업부문을 대주주 입맛에 맞게 쪼개서 상장하는 일이 많다는 의미다.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추가하면 회사 이사회에서 중복상장과 같이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 상법 개정론의 핵심이다.
정부도 처음에는 상법 개정에 긍정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증시개장식에 참석해 “소액주주 이익이 보호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경영계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 반대 의견이 빗발쳤고, 정부도 일반법인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을 고쳐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비상장회사나 중소ㆍ중견 기업들에게도 동일한 영향을 주는 상법 개정 대신 상장기업의 재무적 거래에서 소액주주 피해를 막는 절차적 장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관건은 국회 논의 과정이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야당의 주장대로 상법을 고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정부가 제시한 자본시장법 개정인 유리한지를 두고 국회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TF(태스크포스) 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개정안은 ‘계열사 간 합병’이나 ‘물적 분할 후 재상장’과 같은 특정 사안에만 국한된 핀셋 규제로 한계가 있다”면서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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