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한형용 기자] 반도체 등 한국 주요 산업이 ‘미국발 리스크’에 휘청거리고 있다. 임기가 1달 보름가량 남은 바이든 행정부는 K-반도체 분야 악재의 뚜껑을 열었고, 내년 1월20일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 부과와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 등 추가 악재를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수출통제 대상 품목에 특정 HBM 제품을 추가한다고 관보를 통해 밝혔다. HBM은 AI(인공지능)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이다. 시행 시기는 내년 1월1일이다.
상무부는 이번 수출통제에 HBM의 성능 단위인 ‘메모리 대역폭 밀도’가 평방밀리미터당 초당 2GB보다 높은 제품을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에 맞춰 통제하기로 했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
대상은 구형인 2세대 HBM부터 최신 제품인 5세대 HBM까지 모든 제품이 포함됐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기술을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중대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원천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수출통제를 적용받게 됐다. 앞서 올 상반기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추가 제재 가능성을 대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리서치 업체 트렌드포스는 “추가 수출 제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AI용 칩과 메모리 재고 비축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품목은 반도체로 올해 1∼10월 규모는 전년 대비 31.5% 늘어난 386억달러(약 54조2000억원)로 집계됐다.
다만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사양이 낮은 HBM 일부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매출 대비 비중이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HBM 전량을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해온 만큼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리스크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최대 리스크는 반도체 보조금 및 관세 부과와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 등이다.
반도체 보조금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온 분야다. 여기에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는 이미 예고됐다.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은 최근 ‘자동차 업계, 트럼프의 자동차 수입 관세에 대해 대비한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20%의 보편관세가 부과될 경우 현대ㆍ기아차는 최대 19%의 EBITDA(세금, 이자, 감가상각비를 차감하기 전의 순이익) 감소 리스크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 가능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IRA 도입 후 대미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린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완성차ㆍ배터리 제조사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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