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정사에 길이 남을 ‘대형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헌법상 요건에 어긋나는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돼 법적ㆍ정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협업단체 소속 언론인들이 4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헌법 위반이라며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안윤수 기자 ays77@ |
◇“야당 파괴 기도… 100% 탄핵 사유”=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25분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담화를 통해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야당이 입법 독재와 탄핵ㆍ특검 추진, 예산 폭거 등을 통해 국가의 사법ㆍ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려 한다는 이유였다.
우리 헌법 제77조 1항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계엄사령부는 계엄 선포 직후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포고령까지 발표하고 군 병력을 국회에 투입했다.
이에 국회는 4일 오전 1시 본회의를 열어 재석 의원 190명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헌법 제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6시간 만인 4일 오전 4시27분쯤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위헌ㆍ위법행위로,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헌법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거론한 이유만으로는 헌법상 계엄 선포 요건에 맞지 않아 이번 사태에 대한 법적ㆍ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A 전 헌법재판관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란 전쟁 중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쟁이 임박했거나 이에 준하는 내란ㆍ소요 등이 극심해 경찰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군대의 힘을 동원해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며 “헌법상 요건에 어긋나는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탄핵 사유”라고 일갈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도 “명백한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헌정질서를 중단시킨 것”이라며 “100%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명백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계엄 선포로, 대통령이 권한을 심각하게 오ㆍ남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사실상 야당 파괴를 기도했다”며 “이는 헌법상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국 3만여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법정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도 계엄 선포 직후 성명을 통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자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위헌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중대한 위법행위’ 해당 여부 관건= 탄핵심판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내린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재 결정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정지된다.
탄핵 결정이 내려지면 대통령은 파면되고, 민ㆍ형사상 책임도 져야 한다. 대통령이 파면되면 이후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실제로 헌재로 공이 넘어가면 탄핵 사유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만약 ‘계엄 상황이 불과 몇 시간 동안 해프닝에 불과했다’고 본다면 탄핵이 기각될 수도 있지만, 헌법상 요건에 맞지 않는 계엄 선포를 시도했다는 자체가 중대한 위법행위로 받아들여진다면 대통령이 파면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지난 10월 이종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영진ㆍ김기영 재판관 등 국회 선출 몫인 헌법재판관 3명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후 아직도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은 헌재를 구성하는 9명의 재판관 중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명은 국회에서 선출,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여야가 국회 선출 몫인 재판관 3명에 대한 추천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면서 후임 인선이 미뤄졌다.
다행히 헌재의 사건 심리를 위한 ‘심리 정족수’ 규정의 효력은 일단 멈춰진 상태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재는 이 소장 등이 퇴임하기 직전 ‘임기 만료에 따라 재판관 공석 상태가 된 경우’에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효력을 정지시켰다.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사건 심리는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법조계에서는 재판관 공석 상태에서도 남은 재판관 6명이 만장일치로 탄핵에 찬성한다는 전제하에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노 변호사는 “앞서 헌재가 재판관 6명으로도 사건 심리를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재판관 6명의 찬성으로 탄핵 결정이 가능하다"며 남은 재판관 6명이 탄핵심판 심리는 물론, 탄핵 결정까지 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장 교수는 “앞서 헌재의 판단은 ‘의결 정족수’가 아니라 ‘심리 정족수’에 국한된다”며 “재판관 6명으로 사건 심리는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탄핵 인용 결정은 다른 문제”라고 언급했다. 만약 재판관 6명이 심리한 결과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해 탄핵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6명으로 무리하게 심리를 진행했다’는 비판은 물론, 과연 국민들이나 야당이 결론에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이유다.
이 때문에 국회가 하루빨리 3명의 재판관을 선출해 재판관 9명을 모두 채운 뒤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판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A 전 재판관은 “국가 유지를 위해 하루빨리 국회가 재판관 3명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라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해 헌정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선출 몫인 재판관의 경우 실제 인사권은 국회에 있고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이라고 볼 수 있어 대통령 권한대행이 ‘현상 유지’ 차원에서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선애 전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에 따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했다.
◇“반헌법적 계엄 선포는 명백한 내란행위”= 이와 함께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형법상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특권을 갖지만, 내란죄나 외환죄는 예외적으로 처벌 가능하다.
형사법 전문가인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반헌법적인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정치활동을 막기 위한 계엄군의 국회 강제 진입은 명백한 내란행위”라고 지적했다.
형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ㆍ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내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내란의 우두머리는 사형이나 무기징역ㆍ금고로,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이나 무기징역ㆍ금고 또는 5년 이상의 징역ㆍ금고로 처벌된다.
형법상 ‘국헌 문란’은 △헌법ㆍ법률에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헌법ㆍ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과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시키거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여기에 모두 해당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헌법상 요건에 어긋나는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행위임이 분명하고, 계엄군을 국회에 진입시킨 행위는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회의 기능을 강압에 의해 불가능하게 하려 한 것이 명백하다”며 “내란죄는 친고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중대범죄인 만큼 검찰이 당연히 인지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내란죄를 저질렀고, 따라서 재직 중이라 하더라도 형사상 소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수사 역시 가능하다”며 “검찰은 계엄 준비ㆍ선포 과정에 가담한 자들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장 출신의 B변호사도 “계엄 상황이 워낙 짧게 끝났지만, 군대를 동원해 국회 활동을 막으려 했다는 자체로 내란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의 C변호사도 “계엄이 선포됐다고 하더라도 국회 활동에는 손을 댈 수 없다”며 “현직 대통령이라도 내란죄는 형사소추 대상이자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중대범죄로, 수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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